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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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2021-08-14 (토) 손주리 /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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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칠월 말이면 둘째 아이 생일에 맞춰 엘에이를 방문한다. 아직은 비행기 타기가 조심스러워 여덟 시간을 운전했다.

생일이야 매해 돌아오는 것이고, 미역국 끓이는 것이 전부이지만, 아이가 삼십대에 들어서는 이번 생일은 느낌이 좀 달랐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이가 내 품속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야한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이유식을 못 뗀 유아처럼 짝사랑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나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새로운 감정을 느낄 때마다 친정어머니 생각을 하곤 한다. 형제가 많은 우리집은 큰언니를 필두로 평균 이 년에 한번씩 결혼식을 치렀다.


둘째 오빠 결혼식을 마치고 위로의 차원에서, 큰오빠 장가보낼 때보다는 덜 서운하시죠 라고 엄마께 물었었다. 뜻밖에도 엄마는 “내려갈수록 더 해. 자식을 키워보면 그때야 내 마음을 알런지”라시며 방을 나가시는 것이었다.

큰아들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셨고, 또 이미 딸과 아들을 결혼시킨 경험이 있어 나이순으로 내려갈수록 담담하실 줄 알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던 것이다. 엄마 말처럼, 아니 그때의 엄마보다 몇 살이 더 먹고서야 어떤 마음이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두 아들을 키우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참 두려운 일이었다. 한사람의 우주를 형성시켜야하는 그 책임과 의무를 상상도 못한 채, 그냥 사회의 매뉴얼대로 아이를 낳아 길렀던 것이다.

너무나 소중하고 예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였지만, 때로는 너무 힘들어 방치한 적도 있었고, 무지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품에 안고 키웠던 아이가 성장하여 독립하는 것을 보는 일은, 보람이라기보다는 회환에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이다. 더하여,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아쉬움도 함께 따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실수와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자녀양육이 내 인생에 주어진 소중한 과제이자 선물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자신들의 느린(tardy) 성향이 나를 닮았다는 두 아들의 불평에 전혀 이의 없는 이 엄마는, 비록 자식 사랑은 영원한 짝사랑이라고 해도 여전히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말이다.

<손주리 /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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