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도쿄 대회 홀로 출전…”펜싱 보완하면 파리에선 금메달 나올 것”
7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근대5종 레이저런 경기에서 한국 전웅태가 동메달을 획득하고 있다. [로이터=사진제공]
"감개무량합니다."
1964년 일본 도쿄에서 근대5종이라는 낯선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최귀승(80) 전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은 57년이 지나 같은 곳에서 까마득한 후배가 역사적인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쾌거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 전 부회장은 "전웅태, 정진화가 나란히 메달을 걸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정말 잘했다"면서 "메달이 보통으로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 고생이 많았고,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선 한국 근대5종의 역사 한 페이지가 새로 쓰였다. 7일(한국시간) 남자 개인전에서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가 동메달을 획득, 한국 근대5종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것이다.
그 역사의 시작엔 최 전 부회장이 있었다. 그는 57년 전 한국 근대5종의 첫 '올림피언'이었다.
원래는 승마 선수였던 최 전 부회장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자 '북한이 하지 않는 종목으로 올림픽 진출을 타진해보자'는 생각에 승마가 포함된 근대5종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단일팀이 성사되진 않았지만, 최 전 부회장은 한국의 첫 근대5종 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근대5종은 승마에 펜싱, 수영, 육상, 사격까지 5개 종목을 모두 해야 하는 경기다. 최 전 부회장은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대표 선수들과 훈련하며 다른 종목들을 익혔다.
그는 "올림픽에 갈 때는 이렇다 할 팀도 없이 선수는 저 혼자였고, 대한체육회에서 감독으로 한 분이 같이 가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순위는 37명 중 최하위였으나 올림픽 근대5종 역사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그때 처음으로 남았다.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최귀승 전 부회장 [대한근대5종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1988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국내에 근대5종이 본격적으로 싹을 틔우기 시작하면서 최 전 부회장은 왕성하게 활동했다.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근대5종연맹 전무이사, 부회장 등을 지냈고, 1996년엔 국제연맹 부회장으로도 뽑혀 세계 무대에서 종목 발전에 기여하며 한국의 존재도 알렸다.
사격과 육상의 복합 경기인 '레이저 런'이 국제대회에 채택되고, 이번 올림픽 경기처럼 하나의 스타디움에서 5개의 종목을 모두 치르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과정에 그의 노력이 녹아들어 있다.
'불모지'에서 꽃을 피우려 애를 쓴 시간을 돌아보며 최 전 부회장은 "제가 좋아서 한 것이라 어려운 점이랄 것도 없었다"며 웃었다.
얕은 저변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조금씩 커나간 한국 근대5종은 2000년대 들어선 국제무대에서도 기량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세계선수권대회나 월드컵에서 입상하는 선수가 나왔고, 올림픽 메달의 기대감도 생겨났다.
최 전 부회장은 "한국 근대5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연맹이 편안해서다. 파벌 싸움이나 내분이 없고 자기 할 일들 착실히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연맹 고문을 끝으로 최 전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날 때도 올림픽 메달만큼은 한국 근대5종의 숙원으로 남아있었는데, 그가 첫 발자국을 남겼던 도쿄에서 마침내 이뤄졌다.
최 전 부회장은 "우리가 세계 최강국 수준으로 올라섰는데, 한동안은 이런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며 "연맹과 경기인들 모두 지금처럼 하는 일들 잘하면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덕담했다.
이어 그는 "죽기 전에 올림픽 금메달을 보는 게 원이다"라고 힘줘 말하며 "펜싱만 조금 더 보완한다면 3년 뒤 파리에서는 분명히 금메달이 나올 것"이라고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