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이 맺은 유일한 결실인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는 이번 주의 언론보도는 아이티 대통령 암살소식이 전해진 뒤 3주 만에 나왔다. 불길한 소식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미군철수가 확정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대부분의 지역이 정부의 통제권 밖에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필자로 하여금 “자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유지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최근 대론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이 공동으로 저술한 “좁은 복도”(Narrow Corridor)는 이 질문에 대한 최상의 대답을 제시한다. 이들에 따르면 어느 사회에서건 민주주의로 향하는 첫 걸음은 질서와 안정이다. 역사는 폭력조직과 군벌, 종족의 힘에 짓눌려 효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거나 통치하지 못한 국가들의 사례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이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이자 미래일지 모른다.
정치 질서를 확립한 국가가 드물다지만 자유로운 정치질서를 유지하는 국가는 더더욱 희귀하다. 자유 민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정부형태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에 충분한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국민의 권리를 억압할 정도로 강해선 안 된다. 대론과 제임스는 이처럼 이상적인 정부를 “족쇄에 묶인 리바이어던”이라 부른다. (앞서 토마스 홉스는 성서에 등장하는 괴수 리바이어던을 국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자유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권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 싸우는 시민사회의 성장을 허용해야 한다. 이처럼 국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할 때 안정과 자유는 균형을 이룬다. 서구 국가들은 강력한 정부와 시민사회를 동시에 구축했기 때문에 안정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잡는데 성공했다.
20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통제력을 확립하는데 실패했고, 이로 말미암아 “좁은 복도”의 저자들이 말하는 ‘부재중인 리바이어던’ 상황을 만들어냈다. 반면 이집트의 경우는 국가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는 잠시 민주주의와 썸을 타는 듯 했지만 결국 독재국가로 돌아섰다. 그런가하면 정부가 권력을 행사해 사회 최상위층에 속한 소수 엘리트들의 배를 불려주는 이른바 ‘종이 리바이어던’ 국가도 적지 않다. 나이지리아와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서구사회는 어떻게 이상적 정부형태를 갖게 되었을까? 대론과 제임스는 반대되는 두 개의 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첫째, 질서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한 제도와 법과 전통이라는 로마제국의 유산이 있었다. 둘째, 집단과 집단 사이의 평등을 중시하는 북유럽 부족들에게는 강력한 지도자들에 대항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귀족과 왕, 교회와 국가, 그리고 중세시대 영주들 사이의 대립은 개인의 자유를 키우고 번성케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는 서구의 문화적 우월성이라기보다 유럽의 특이한 역사에 관한 문제다. 인도, 한국, 코스타리카 등 타 지역에 속한 국가들 역시 이와 유사한 절충을 이루어냈다. 그곳에 이르는 복도가 좁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알아보는데 실제로 도움을 준다.
지구촌 곳곳에서 오랜만에 선거가 치러지면서 모두가 환호했던 1990년대 말, 필자가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현상을 알아챈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들은 조직적으로 권력을 남용했고 국민의 권리를 박탈했으며 자유롭고 합헌적인 정부의 본질을 털어냈다. 유감스럽게도 1990년대 말 이후 비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명단은 점점 길어졌다. 유럽에 속한 헝가리, 민주주의 국가로 통하던 인도와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독재국가로 변모했다.
좁은 복도를 통과해 정부와 사회 사이의 균형을 찾은 미국과 같은 국가들은 운이 좋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중주의 운동이 오랫동안 중립을 지켜온 정치제도와 규범을 위협하는 민주주의의 오작동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이 장악한 레드스테이트의 개표시스템을 정치화하려는 공화당의 노력에서 우리는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격한다.
미국은 여전히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남아있지만 폭도들의 의회 난입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이번 주에 열린 청문회는 이곳의 민주적 규범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의 정치제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튼튼하지만 분열된 사회로 인해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6일에 발생한 의회난입사건의 기본적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정도로 미국 사회의 분열상은 심각하다.
무분별한 정치인들에 의해 잔뜩 고무된 폭도들의 행동은 민간인 그룹이 우리의 민주적 제도에 얼마나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 중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보다 강력한 민주적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국민의 뜻을 뒤집으려는 노력에 저항함으로써 손상된 제도를 수리할 수 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1787년 제헌회의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당시 누군가가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제헌회의에서 결정한 정부형태에 관해 물었다. 그는 “공화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족을 달았다. “우리가 지켜낼 수 있다면 말이죠.”
제헌의회에 참가한 대의원들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정치 시스템을 고안했을 것이지만 그 같은 제도의 성공여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달려있다. 언뜻 불길한 경고처럼 들릴지 몰라도 민주주의를 보존할 힘이 우리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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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