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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발발 71주년] 존 허 CC카운티 도서관 커미셔너 “한국전쟁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21-06-25 (금) 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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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살에 미군 탱크포병 부대원으로 참전

▶ 참혹한 전투 치른 기억 지금도 생생...미참전용사들과 우의 다지며 활동

[6.25 발발 71주년] 존 허 CC카운티 도서관 커미셔너  “한국전쟁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존 허 한국전 참전용사(왼쪽)가 앤티옥 지역 한국전 참전용사인 존 맥물런(가운데)씨 등과 대화를 나누며 우의를 다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당시 참혹했던 전투 상황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존 허(John M Huh, 한국명 허정, 87세)씨는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1950년 17살때 미 8군 탱크포병부대의 통역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당시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군들의 영어 질문에 몇마디 답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소년병으로 전투에 참가하게 됐다.

미군 소속으로 3년간 여러 전투에 참전한 그는 “눈으로 세수하며 커피를 끓여먹던 한국의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씨를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존 허씨는 철원 인근 폭찹(pork chop) 고지(높이 203미터)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에 맞선 미군이 탱크와 대포에 의한 치열한 공격끝에 1주일만에 승리를 거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라고 회고했다. 그는 쌍방에 많은 사상자가 나온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분대장은 지난해 별세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산이 일곱번이나 변하는 긴긴 세월이 흘렀어도 수백만명이 희생된 6.25 전쟁은 잊혀져서는 안된다면서 한반도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허씨는 전쟁이 끝난 1953년에 제대 후 한국에 나와있던 미국 경제원조처(OEC, Office of the Economic Coordinator) 책임자 요청으로 통역 업무를 맡아하다가 그의 호의로 1958년 캔자스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캔자스대학을 거쳐 미시간대학에서 지질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TEXACO 석유회사에 일했다.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인도네시아 인근 해역 해저 탐사중 큰 매장량의 석유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과 한국, 인도네시아가 공동 추진한 석유탐사에 한인 과학자로 맨처음 해상에서 석유를 발굴, 조국의 석유 파동 해결에 이바지한 것이 자신의 인생에 보람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1990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인도네시아 명예대사로 임명되어 2년간 일했었다고 밝혔다.

현재 앤티옥에 거주하고 있는 존 허씨는 미 재향군인회 회원으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교류하며 우의를 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후에는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에게 지원하는 마스크를 전달하며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있다. 또 지난 2019년부터는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도서관 커미셔너로 일하면서 도서 벌금 반납제 폐지 등 도서관 운영과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지질학 전문가인 그는 현재 스탠포드 후버연구소에서 군사와 에너지, 무역분야 안전과 관련한 연구원(Research Fellow)으로 일하는 등 노년에도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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