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가주의 ‘백두산’…초급 코스 올라도 장쾌한 전망

2021-06-18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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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Mt. Baldy ( 10,064’) - East Course

남가주의 ‘백두산’…초급 코스 올라도 장쾌한 전망

Backbone 구간을 오르면서 보이는 Mt. Harwood의 동쪽면.

남가주의 ‘백두산’…초급 코스 올라도 장쾌한 전망

위에서 보는 Baldy Bowl.


남가주의 ‘백두산’…초급 코스 올라도 장쾌한 전망

Mt. Baldy 정상부에서의 동쪽 전망.


LA 지역 또는 남가주 일원에 살면서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고 있는 우리 한인분들이 가장 자주 찾는 높은 산이라면 아무래도 Mt. San Antonio(=Mt. Baldy)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Claremont 에서 북쪽으로 14마일 내외를 산길로 들어가는데, LA 한인타운에서 1시간이면 산 밑에 닿을 수 있는, 해발고도가 10,064‘(3,068m)에 이르는, San Gabriel 산맥의 최고봉이다. 정상부위는 수목이 자라기 어려운 높은 고도라서 맨흙이 드러나 있기에 민둥머리산이라는 의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Mt. Baldy(볼디) 또는 Old Baldy 로 부른다.

Mt. San Antonio란 공식명칭은, 1790년대에 이곳에 있던 Mission San Gabriel Arcangel 의 신부님들이, 13세기의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수사였던 ‘Saint Anthony of Padua’ 의 이름을 따다 붙인 것인데, 일반 민중들은 보다 소박한 이름인 “볼디”를 선호한다.


겨울철이나 요즘같은 이른 봄에는 흔히 정상부위가 흰눈에 덮이는 백두의 산이 되는데, 우리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보다 324m정도가 더 높아, 맑은 날엔 LA의 한인타운에서도 그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남가주인들의 정서적인 백두산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니, 등산동호인이라면 모두가 마땅히 올라 봐야 할 산이라고 하겠다.

이 산의 특징을 들자면, 우선 연중 내내 다양한 기후조건에서도 멋진 등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의 등산은 우리 남가주 지역의 어느 산이라도 대개는 아무런 염려가 없을 것이 당연하겠지만, 햇볕이 쨍쨍하고 기온이 높은 여름에도, 이 산은 고도가 높은 관계로 산 아래 지역보다 훨씬 청량하고 쾌적하여, 오히려 일종의 ‘피서등산’을 하는 셈이 된다.

그럼 겨울은 어떨까? 우리의 겨울은 대개 우기와 겹치게 되는데, 이 때는 대단한 고산인 이 산에는 비 아닌 눈이 내리게 되는 관계로, 몇가지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충실히 지킨다면, 오히려 대단히 환상적인 별유천지의 ‘설국등반’을 즐길 수 있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등산코스들이 있어 각자의 등반능력이나 취향에 맞추어 ‘마춤등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코스만 해도, 동서남북의 4 방면에 걸치는 다양한 난이도의 등산로가 있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누구라도 쉽지 않게’ 등산을 할 수 있기에, 초심자부터 노련한 등산인까지 두루 만족스러운 등산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다소 억지스럽게 말을 만들어 본다면, 초급 중급 고급 특급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의 다양성이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이런 대단한 산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우리 남가주민들이 누리는 또 하나의 큰 축복임이 분명한데, 오늘은 구태여 초급이라고 할 수 있을 동쪽 코스를 소개한다. 볼디산의 남쪽 기슭의 Manker Flats(6300‘)에서 스키리프트를 타고 Mt. Baldy Notch(7800’)의 스키장까지 올라간 후, Devil’s Backbone Trail을 따라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는 코스이다.

왕복 6.4마일에 순등반고도는 2,264‘ 로 별로 어렵지 않으며 왕복 6시간을 잡으면 된다. 스키장은 비수기일 때라도 주말(토, 일; 08:00~17:00)에는 운행을 한다. 만약 스키리프트를 타지 않는다면, 왕복 13.6마일에, 순등반고도가 3800’가 되어, 다소 힘든 산행이 되어진다. 단, 이 코스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나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또는 등산로에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경우에는 안전을 위해, 절대로 오르지 않아야 한다.

가는 길


Freeway 210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 Claremont 시의 Baseline Road 의 출구로 나온다. Baseline에서 좌회전하여 한 블럭을 가면, Padua Ave 가 되고 여기서 우회전하여 북쪽으로 1.7마일을 가면 신호등이 있는 Mt. Baldy Road 가 된다. 다시 이 길을 따라 우측으로 7.2마일을 가면 Mt. Baldy Village 에 이르는데, 계속 2마일을 더 가면 길이 왼쪽으로 직각으로 꺾이며 지그재그로 경사진 길이 된다.

대략 3마일을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캠프그라운드가 있다. 계속 직진하면 반마일쯤의 거리에 스키리프트 타는 곳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고 리프트 이용권(왕복은 일반 25, 시니어 15)을 구입하여 스키장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직선거리 1마일에 15분이 걸리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등산코스

리프트를 내리는 곳이 Baldy Notch 라고 부르는 Mt. Baldy 의 겨울철 스키장이다. Devil’s Backbone Trail 을 찾아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길이 좌우로 나뉘는데, 두 길이 나중에 만나게 되므로 어느 쪽이라도 괜찮다. 왼쪽은 스키 활강장으로 경사가 가파른 대신에 거리는 조금 짧은데 우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이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길이 왼쪽으로 굽으며, 1.3마일 지점에선 Ski Lift Tower(8800’)를 지나고, 다시 몇 분 후에는 Devil’s Backbone구간에 닿게 된다.

좁은 산줄기를 중심으로 좌우 양쪽이 아스라이 함몰된 계곡인지라 다소 심란하다. 그러나 길이 아주 좁지는 않으므로, 강한 바람이나 눈이 없으면 걱정할 필요는 없으며, 되려 고산등반에서의 적당한 긴장감을 즐기는 기회가 된다.

2마일쯤의 지점에 오면 거치른 ‘용의 등뼈’구간이 끝나고, 오른쪽에 솟아있는 Mt. Harwood (9552’)의 부드러운 남쪽 기슭을 통과하게 되는데, 여성 최초로 시에라클럽의 회장을 역임했던 Aurelia Harwood(1865~1928)를 기념하여 그 녀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산이다. 체력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별로 힘들지는 않으니, 오른쪽의 Mt. Harwood 의 정상에 올라 일망무제의 경관을 잠시 즐기는 것도 좋겠다. 왼쪽으로 멀리 펼쳐지는 San Antonio Canyon 의 푸르름이 선명하게 아름답다.

2.4마일쯤의 지점에서는 왼쪽에서 대단히 가파르게 올라오는 Register Ridge Trail 이 합류되며, 0.2마일쯤을 더 직진하면 Mt. Baldy 와 Mt. Harwood 사이의 Saddle(9360‘)에 이르게 된다. 정면에 볼디 정상으로 오르는 지그재그의 가파른 등산로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수목이 거의 없는 정상까지 0.6마일의 거리에 700’ 를 오르는 꽤 급한 경사로이다. 중간에 숨이 가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전후좌우를 관망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좌측으로는 볼디산의 남쪽 기슭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생긴 급사면을 포함한 웅장한 Baldy Bowl 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정상부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멋진 경치이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구간에서 두통이나 어지러움 또는 피로감 등의 증세를 겪기도 하는데, 정상에 임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쉬어가며 천천히 오르다 보면 이내 곧 정상에 닿게 된다. 해발고도 10,064‘라고 새긴 동판이 바닥에 박혀있다. 무릎을 굽혀 반지르한 정상표지판에 입을 맞추며 등정의 감격을 누리는 이가 아주 멋져 보인다.

전망이 참 대단하다. 장쾌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내 발아래에 있다. 백두산(2,744m, 9,003’)보다 훨씬 더 높은 산들이 군왕을 호위하는 굳센 장수들처럼 내가 지금 두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볼디궁을 감싸고 있다. 서쪽의 West Baldy(9988’), 서북쪽의 Mt. Baden Powell(9399’), 북쪽의 Dawson(9575’)과 Pine( 9648’), 동쪽의 Mt. Harwood(9552’)들이 그들이다. 이외에도 8000’ 급의 숱한 장수봉들이 주변을 겹겹으로 감싸며 진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정상을 타고 넘는 차가운 바람을 타고, 상상의 나래는, 저 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동녁의 산들을 향해 펼쳐진다. LA 의 이 Mt. San Antonio(10064‘)는 고구려의 성이고, 남동쪽 멀리 보이는 저 Palm Springs의 Mt. San Jacinto(10834’)는 백제의 성이며, 저기 동쪽으로 우뚝한 Big Bear의 Mt. San Gorgonio(11503’)는 신라의 성으로, 외연히 삼한을 이루고 있는 모양으로 생각해 본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모두가 다 무상하여 고금동서의 모든 일들이 한바탕의 봄꿈에 지나지 않을진대, 하물며 배낭을 메고 이곳 정상에 올라서서 저 먼 곳을 바라보며 감격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의 찰나성이야 더욱 일러 무엇할까? 100년쯤 전에 이곳에 오른 사람들은, 남자들은 도끼나 장총을 들고 여자들은 긴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을 텐데, 앞으로 100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서게 될지 궁금해진다.

1000년쯤 전에도 오늘처럼 이곳에 섰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1000년쯤 후에도 오늘처럼 이곳에 서는 사람들이 있을까? 시대에 따라 차린 모습들은 달라도 정상에 서서 대자연의 비경을 대하는 전광석화처럼 찰나에 명멸하는 인간으로서의 원초적 감동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인가?

1000년도 넘는 옛 시절을 살았던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낙천;772~846)의 싯구를 새겨 본다.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 ( 석화광중기차신 )

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癡人 (불개구소시치인)

달팽이 뿔같은 이 작은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다툰단 말인가

부싯돌에서 튕겨나는 불꽃처럼 짧은 것이 우리네의 삶이거니

넉넉하든 쪼들리든 나름대로 어찌 즐겁게 살지 않을까 보냐

입 벌려 환히 웃을 줄 모른다면 그는 바로 어리석은 자 이리

눈앞에 가없이 펼쳐져 있는 이 유유한 대자연은 그저 저렇듯 우리네 인간에게 무심하고 불인(不仁)하다. 비록 덧없는 우리들 삶이지만, 그래서라도, ‘지금 여기 우리’ - 이것이야 말로 더욱 소중한 것이라는 감회가 가슴에 젖어든다.

하산은, 물론 올라온 길을 되짚어 그대로 내려가면 될 테지만, 혹시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일행 중에 있으면, 올라올 때와는 다른 코스인, Ski Hut 을 경유하는 편도 4.5마일 거리의 Baldy Bowl Trail 을 따라, Manker Flats 으로 직접 내려가는 것도 일석이조의 좋은 선택이 된다.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v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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