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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원더풀 미나리

2021-05-20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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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영화 미나리는 잔인한 4월을 축제로 마감하게 해주었습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매일 벌어지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모욕과 폭력은 이해하기 힘든 초현실적 고통입니다. 그 와중에 한 동양인 가정의 이민 정착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는 폭풍이 몰아치는 광야의 피난처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미나리 영화가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각본을 쓰고 감독을 했던 정이삭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있습니다.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뛰어난 영상미와 그에 곁들인 음악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정이삭 감독의 어릴적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시나리오는 국적을 초월하여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민 2세대들이 이민 1세대 부모님들의 정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시나리오가 국적을 불문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경험에서 나온 솔직함과 사실적인 묘사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미나리는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식물입니다.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심을 곳을 찾은 후에 손주들에게 “너희 미국 촌놈들은 미나리가 뭔지 모르지? 미나리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누구나 먹을 수 있으며,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라고 외친 것은 이민자들의 속성을 정말 잘 드러내어 준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이 영화 전반에 아주 잘 표현되었습니다.
현실의 삶에 지친 남편 제이콥이 역시 지쳐가는 아내 모니카에게 마지막 숨을 쉬듯 내뱉은 대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국에 가면 우리 서로를 구원해 주기로 했잖아...”이 대사처럼 미나리는 구원에 관한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나무 한 그루 옮겨 심어도 뿌리내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에서 성인이 되어 다른 나라에서 뿌리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미나리는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의 강력한 비유입니다.


영화 미나리가 보여준 탁월한 의미는 세대 간의 이해와 화합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너무나 호소력 있게 다루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 손주들은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할머니의 이미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민자의 가정들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세대 간의 간격을 메꾸지 못해 남보다 못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로 인해 이 가정에 최고의 위기가 닥치자 자책하며 떠나가는 할머니의 앞을 손주들이 가로막으며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와 함께 집으로 가요.”라고 잔잔하게 말하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장면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중요한 상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제이콥의 대사는 영화 미나리가 어떤 영화이고 무엇을 말하려는 영화인지를 수채화처럼 잔잔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할머니의 실수로 창고에 불이나 애써 가꾼 모든 농작물을 불태우고 난 절망의 상황에서 제이콥은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 데이빗을 데리고 미나리밭에서 얘기합니다. “미나리가 참 맛있겠다. 할머니가 자리를 참 잘 선택하셨어.”어리석고 약하며 무지해보였던 할머니가 선택한 미나리밭에서는 생명이 자라고 있었고, 이제 그들은 할머니가 유산처럼 남긴 미나리를 먹으며 다시 이민자의 삶을 힘차게 살아갈 것입니다.

끝으로 영화 미나리는 배우 윤여정씨의 탁월한 연기력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생애 자체가 억세고 힘든 세월이었지만 미나리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치열한 삶에서 무르익은 진정성 있는 연기에 세계가 박수를 보낸 것입니다. 원더풀 미나리입니다.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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