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동물농장
2021-04-15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특히 평등하다.”
인간들의 탐욕과 독재정권의 출현에 대해 경고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명문장입니다. 존스 농장에 살던 동물들이 가혹한 생활에 못 이겨 주인을 쫓아내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만, 혁명을 주도했던 돼지 나폴레옹과 실권을 장악한 돼지일당들은 오히려 더 큰 권력층이 되어 자신들의 독재와 비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형용모순의 정치표어입니다. 평등과 정의를 주장하며 등장한 신권력층인 돼지들의 폭압과 독재로 농장의 동물들은 더욱 고통을 당합니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의 공산정권을 비판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새로 권력을 가진 돼지들이 자신들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고 다른 동물들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농장의 모든 풍요를 자신들만이 누리는 것이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내로남불의 추악한 욕망을 한마디로 요약한 촌철살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우화이고 소설의 한 장면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6개월 넘는 우주여행을 거처 도착한 우주선을 통해 화성의 바람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21세기의 한 가운데에서 동물농장을 목격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은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반대하면 반개혁이라고 주장하고, 정적들의 작은 실수에는 날카로운 칼날로 정죄하고 비판하는 내로남불이 너무나 자주 반복되는 한국의 현실이 바로 21세기의 동물농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세력들은 다른 정치세력들보다는 정직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자신들만이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은 5공화국의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엄혹한 시절이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아도 최루 가스로 눈물 콧물을 흘리지 않고는 대학교에 출입할 수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었던 저는 생각이 많아서였는지 비겁해서였는지 애써 시위대를 외면했습니다. 저희 같은 학과는 아니지만 철학과에 다니던 한 친구는 저를 보고 늘 박형이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는 모든 시위의 맨 앞에서 열렬하게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학교를 드나들면서 전투경찰대와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 있는 그를 보며 늘 빚진 마음이 컸습니다. 그 빚진 마음은 그 한 개인에 대한 빚진 마음이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오면서 투쟁했던 모든 운동권들에 대한 빚진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빚진 마음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들이 정권을 두 번째 잡고 있습니다. 특히 현직 대통령까지 감옥에 보낸 촛불정권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부정축재와 온갖 불법들을 저지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그들은 조지 오웰이 경고한 또 다른 독재 세력의 일부였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랜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얻은 결론은 그들이 학문적 기초를 다지고, 내면의 성숙을 가져와야 할 학창 시절을 대부분 시위에 투자하느라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경구입니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배를 띄우는 것은 물이지만 그 배를 전복시키는 것도 물입니다. 국민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세울 수도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라는 경계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최근에 있었던 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담할 정도로 참패를 했습니다. 불과 1년 전에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몰아주었던 국민들의 마음이 왜 그렇게 돌아섰을까요? 세상 모두가 아는데 정작 본인들만은 모른다면 동물농장은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봄꽃처럼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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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