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엄한 운해…선계의 절경인 듯

2021-04-02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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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Hastings Peak ( 4,048’)

장엄한 운해…선계의 절경인 듯

등산 중에 보게 된 구름에 묻힌 인간세상.

장엄한 운해…선계의 절경인 듯

등산의 시작점인 Bailey Canyon Park.


장엄한 운해…선계의 절경인 듯

Hastings Peak에서 보는 Mt. Harvard.


남가주 또는 LA지역에 살면서 등산에 다소나마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선 이 지역 산들의 형세를 대강이나마 알아두면 좋을 것인데, 오늘은 특히 우리LA의 뒷산이라고 볼 수 있는 산줄기인 San Gabriel Mountains의 규모를 살펴본다.

San Gabriel산맥은, 남으로는 LA와 일부San Bernardino County를 접하고 있고, 북으로는 Mojave 사막, 동으로는 15번Freeway, 서쪽으로는5번Freeway에 접하는, 남북으로 23마일, 동서로68마일, 총 면적970평방마일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으로, 제주도 면적의 약 1.5배가 되며, 한라산(1950m)보다 높은 봉우리는 14개, 백두산(2744m)보다 높은 봉우리는 6개가 된다. 또한 동쪽으로는 San Bernardino 산맥, 서쪽으로는Santa Monica산맥을 위시하여, 크고 작은 여러개의 산맥들과 인접해 있는데, 이들 산맥들까지 셈하면, 우리 이 LA지역이야말로 명실 공히 등산인들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가까이에 높고 큰 산들이 즐비한데, 그 중에서 가깝고도 큰 산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단연 Arcadia와 Sierra Madre 시의 뒷쪽에 있는 Mt. Wilson을 들겠다. 이 산은 LA 한인타운 기준으로는 20여마일의 거리로, 승용차로 30분이면 기슭에 닿을 수 있으니, 바로 우리동네 뒷산이라고 도 할 수 있겠다.


큰 산이긴 하지만 높이는, 남가주기준으로는 결코 높다고는 할 수 없는, 5710’(1740m)밖에 되지 않으므로, 자주 찾을만한 좋은 산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산이 크다보니까 정상까지 가려면 대략 편도 6~8마일을 올라가야 하므로, 초심자에겐 다소 무리라고도 하겠다.

그런 취지에서 오늘은 Mt. Wilson의 주변 산 중에서 접근성이 좋고, 싱싱한 4월의 꽃향기와 정취를 흠뻑 느낄 수도 있을 Hastings Peak을 소개코자 한다.

Hastings Peak은 등산시작점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4.1마일로, Mt. Wilson까지 오르는 거리의 절반이 좀 넘는 정도이고, 등반고도도 등산로 입구(약 1130’)에서 약 2950’ 정도에 그쳐, 웬만큼 등산을 한 분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4월쯤에 활짝 피는 Black Sage, Wild Buckwheat, Wild Lilac의 향기를 확실히 만끽할 수 있는데, 왕복 8.2마일이며, 총 산행시간은 보통 6시간쯤이 되겠다.

가는 길

210번 Freeway의 Santa Anita Ave에서 내려 1.3마일쯤 산쪽으로 올라간다. Grandview Ave에서 좌회전하고, 1.7마일쯤가면 Grove St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회전하여 0.3마일 직진하면 아담한 규모의 Bailey Canyon Park의 입구가 나온다. 공원안에 주차한다.

단, 공원은 일몰 무렵에는 문이 닫히므로, 돌아 올 시간을 감안하여, 필요할 경우에는 공원 밖의 주택가에 주차한다. 아담한 크기의 공원엔 손을 씻을 수 있는 깨끗한 화장실과 등산안내판이 잘 갖추어져 있고, 주차장 주변의 나무들도 아름답다.

등산코스


공원안의 여러 안내판을 잘 읽어 본 후, 맨 서쪽 울타리의 회전문(Turnstile)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산쪽으로 들어간다. 바로 정면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Sierra Madre시의 초대시장의 이름을 붙인, Jones Peak이다.

숲길로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길이가 10미터쯤될 다리가 나오는데, 건너지 않고, 직진한다. 5분정도 더 가면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등산을 처음 시작하는 곳과 3.1마일 지점의 Jones Peak의 바로 밑 부근에는 독성이 강한 Poison Oak이 자생하고 있으니, 특히 3출엽 - 하나의 잎자루에 작은 잎이 세개씩 붙어있는 - 식물은 만지지 않아야 한다. 또 걷기에 힘들지 않도록 경사각을 완화했기 때문인지, 등산로 시작점에서 부터 3마일 지점까지 약 50개에 달하는 Switchback들이 있다.

하얀 클로버꽃을 닮은, 꽃차례가 2~3인치 간격으로 4개 정도의 층을 이루며 사람의 키 높이 정도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식물을 계속 보게 된다. Black Sage다. 잎을 따서 손끝으로 비비면, 싱그런 박하향을 즐길 수 있다. 대략 2마일까지의 낮은 고도구간에 계속 길섶의 코스모스인양 무리로 피어나 있어 숨이 찬 등산객들의 피로를 날려준다.

등산로 입구로부터 0.7마일쯤에 이르면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들어 가면 10m쯤에서 길이 끝나고,그 곳에 아담한 벤치가 놓여있다. 잠시 걸터 앉아 물도 마시며, City View를 즐길 수 있다. 산밑으로 가까이 있는 평화로운 공원같은 시설은 신부님들이 머무시는 수도원이다.

0.85마일 지점에 2개의 벤치가 놓여있다. Indian Lookout Point이다. 옛날에 Watsittooya의 용사들이 San Jacinto, Catalina 또는 Verdugo지역의 다른 부족들이 보내는 통신목적의 연기 신호를 살피는 장소로 이용하던 곳이라는 설명판이 벤치에 부착되어 있다. 일종의 봉수대가 있던 곳이었나 보다. 정말 그 시기에는 대기는 마냥 청정하고, 자칭 우월한 문명인이라며 으시대던 외계인간들이 세운 바벨탑이랄 대형 구조물들이 일체 없었을 것이니, 시야가 아주 깊고 넓었을 것이겠다.

2.2마일에 이르면 왼쪽으로 갈라지는 내리막길이 있다. 내려가 본다. 불과 50m쯤에서 길이 끝난다. 걸터 앉기 좋도록, 무너진 집터의 돌벽이 남아있다. 공원의 안내판에서 말하는 “Old Foundation/Cabin Ruins”로, 이 계곡이1875년경에는 R.J. Bailey라는 사나이의 소유였단다. 아마도 그가 직접 이곳에 터를 닦고 돌을 쌓았을 것이다. 이 풍진세상에서, 이곳에 한개 한개 힘들게 돌을 쌓으며 꿈꾸었을 그런 미래의 복된 삶을, 그는 과연 살고 갔을까? 자기가 쌓아올린 돌벽의 일부가, 먼 훗날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의 쉼터가 되고 있을 걸 상상해 봤을까? 그도 나도, 결국은 똑같은, 영원무궁한 광음속을 잠시 서성이다 사라지는 덧없는 한 방울 포말이겠다.

고도가 2420’인 이곳을 전후로 하여, Black Sage는 차츰 드물어 지고, 대신 연보라빛이 돋는 Wild Lilac과 Manzanita가 길의 양 옆을 화려하게 장식해 준다. 온 천지의 기운과 온갖 식물들의 생명력이 합심하여 벌이는, 하루살이 존재인 바로 나를 위한, 이 봄동산의 성대한 축제가 황홀하고 황송하다.

계속되던 오르막이 잠시 평탄해지면서, 곧바로 Saddle(3262’)이 된다. 3.1마일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샛길이 갈라지면서, 그 위로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100m정도의 경사구간을 올라서면, 바로 이곳이 Jones Peak(3386’)이다. 그러나 우리는 왼쪽으로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간다. 여기서 부터는 등산로 주변의 산줄기가 밋밋하고 널찍한 가운데, 허리 높이로 자란 Wild Buckwheat 들이 온 등성이를 가득 덮고 있다. 야생꿀의 주요 소스인 식물이다.

0.2마일을 올라가면 등성이의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길 안내판이 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Bob Annas 라는 이가 만든 길이라서, Hiker Bob Annas’s Trail 이라고 부르는 1마일짜리 등산로이다. 이를 따라 지그재그로 내려가면, Sierra Madre 의 주택가에서 시작되어 Lost Canyon 을 거쳐 올라오는 Mt. Wilson Trail의 3.2마일지점에 합류케 된다. Orchard Camp, Manzanita Ridge를 거치고, Mt. Wilson Toll Road 와 숲길을 거쳐 Mt. Wilson정상에 오르는, 편도 7마일의 나무그늘이 좋은 계곡 코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진으로 등성이를 계속 올라가야 한다. 3.6마일 지점에 고도 3716’가 되는 봉우리를 지나고, 4.0마일에 고도 3810’인 작은 봉우리를 지난다. 4.1마일이 되는 지점의 왼쪽에 1m가 넘는 높이의 철제 앵글이 꽂혀있고 ‘Sierra Madre’라 새긴 Bench Mark가 있는 봉우리가 있다. Hastings Peak(4048’)이다. 예전에 Pasadena지역에 있던 Ranch Owner에서 비롯된 산의 이름이다.

여기까지 오르는데, 걸음이 빠른 사람은 2시간 남짓 걸리는데, 빠르지 않더라도 3시간이면 족할 듯하다. 눈에 드는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이 작은 돌덩이들과 Wild Buckwheat, Yerba Santa, Cactus등 덤불들만 있어 그다지 운치는 없지만, 사방팔방의 전망이 빼어나다.

Mt. Wilson(5710’), Mt. Harvard(5441’), Mt. Yale(4760’), Monrovia Peak( 409’), Rankin Peak(5290’), Clamshell Peak(4360’)을 비롯한 주변 산들을 볼 수 있고, 남서쪽 아래로 사람사는 도시들의 윤곽도 즐길 수 있다.

최근에 책을 읽던 중에 문득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선계(仙界)란 단어와 속계(俗界)란 단어에서 ‘仙과 俗’이라는 글자의 원초적인 의미를 생각케 된 것이다. 즉, ‘仙’이란 山사람이요, ‘俗’이란 골(고을, 谷)사람을 지칭한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이해하자면, 산꾼의 삶의 무대는 ‘선계(仙界)’가 되고, 산꾼이 누리는 경개가 바로 ‘선경(仙境)’이며, 산에 있는 여인은 ‘선녀(仙女)’, 산에 있는 남자는 ‘선인(仙人)’이 아니겠는가. 산을 좋아하여 열심히 산을 찾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쩌면 반속반선(半俗半仙)의 삶을 사는 셈이라며 아전인수로 느긋해 하는 것도 완전히 허무맹랑 그 자체는 아니겠다 싶었다.

상념을 좀 더 비약시키면, 난 우화등선하여 오로지 仙界에만 머무는 神仙의 삶 보다는 半俗半仙에 머무는 우리네들의 삶에 더 생기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불교의 ‘십우도’에서 수행의 최종 단계가 ‘입전수수(入廛垂手)’로 사람의 저잣거리로 돌아오는 삶이 듯, 노자의 ‘곡(谷)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의 谷의 설파가 그렇 듯, 또 에덴동산의 삶이 아닌, 에덴의 동쪽 ‘놋’땅의 삶에서 인류의 역사가 활짝 개화하 듯 말이다. 어쨌거나, 이 번 주말에도 시간을 내어 우리 가까이 있는 ‘선계’를 찾아, ‘선경’을 즐기며, 우리 모두 ‘신선’도 되고 ‘선녀’도 되는 그런 벅차고 멋진 삶을 누리시면 어떠실지?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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