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부활절의 각오
2021-04-01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부활절 날을 정할 때는 유월절 계산법이 기준이 된다. 즉 춘분다음의 첫 음력 보름이 지난 첫번 주일이 부활절이다. 첫 음력 보름이 주일이면 그 다음 주일이 부활절이 된다. 부활절로부터 주일을 제외하고, 40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요일인데 그날이 사순절의 시작이다. 이번 주간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 즉 고난주간으로 토요일에 사순절이 끝나게 되고 이어 부활주일을 맞게 된다. 2 천년전, 주님은 수난주간의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사 죽으시고 다음주일 아침에 부활하셨다. 이 글은 주님의 부활하심에 대해 언급한다. 설교조이며 교리를 담고 있는 글인지라 다소간 딱딱하고 차게 느껴지더라도 용납해 주시길 바란다.
창조이래 인류역사에 가장 큰 3 가지 사건들은 하나님이 人間으로 세상에 오신 것, 그 하나님이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것, 그분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주님은 구원계획을 이루시려 육신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인류 죄를 대신해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무덤에서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올해는 돌아오는 이번 주일(4월4일)이 부활절 주일이다. 전 세계 기독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찬양하면서 그분께 영광을 올린다. 우리교회 성도들도 코로나 19로 인해서 그간 온라인 예배로만 드리다가 이번 부활절에는 1년 만에 교회당에 모여 예수님 부활을 기리며 예배드리게 된다. 부활절로 번역되는 영어 Easter 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Eastre와 Ostara가 합성된 말로 새벽과 봄의 여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새벽은 어둠을 물리치며 봄은 새 생명이 긴 겨울을 이기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부활절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예수님 부활은 설화, 전설, 신화, 실존주의적 해석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다. 성경은 예수님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증언하면서 그가 부활의 몸으로 10차례 가량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게바와 열두 제자들, 오백여 형제들,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과 바울등에게 나타나셨다. 죽어서 무덤에 묻힌 타종교의 창시자들과 달리 예수님에게는 무덤이 없다.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주님은 죽은 이가 아닌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이시다. 일단의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이른 새벽 예수님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천사로부터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살아계신 생명의 주(행3:15)를 믿는다. 주님은 살아계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오늘 역사하신다. 오늘 은혜주시고 오늘 중보사역을 행하신다. 예수님 부활은 기독교신앙의 부록이 아니라 바로 신앙자체이다. 파운스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은 오직 그의 부활의 완성된 사실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 했다.
만약 예수님 부활이 없다면 기독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미련한 자들이다. 우리의 전도는 헛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다. 주님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헛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다. 내세에의 소망도 없을 것이며 종내는 망할 것이다(고전15:14-19).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주의 종이 되었고, 그분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주의 일을 하고 있고 그분과 동행하며 순례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그분이 약속하신 주의 나라에 때가 되면 들어갈 것이다. 물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경외하면서도 그분께 생을 온전히 맡기지 않고 내 뜻 내 의지대로 살아갈 때가 있었다. 내 안에 분명 주님이 계시지만 그분은 잠자는 자요 살짝 잊혀진 자일 때도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기독자로서 마땅한 바이고 참 아름다운 일이다. 헌데 그분을 사랑함은 희생이 따르기에 더욱 아름다운 일이며 그분을 자기 속에서 부활시킴은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일이다. 이 부활절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진다. 때때로 내 안에 귀한 손님처럼 모셔둔 주님을 부활시키고 깨워드려 그분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일하시도록 범사를 맡기며, 감사함으로 그분의 활동하심에 동참하며, 그분이 다시 오시는 날을 소망중에 기다리리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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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