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외감 시달리는 고독한 남자의 광기 파헤친 영화

2021-03-1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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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운전사’ (Taxi Driver·1976) ★★★★½(5개 만점)

소외감 시달리는 고독한 남자의 광기 파헤친 영화

모호크 인디언 헤어 스타일을 한 트래비스가 인간 지스러기들을 쓸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

리처드 기어가 주연하는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1980) 등을 감독한 폴 슈뢰더가 쓴 뛰어나게 사실적인 각본과 마틴 스코르세이지의 어둡고 치열하고 해부하는 듯한 연출 그리고 바짝 마른 로버트 드 니로의 격정적이요 사나운 연기 및 버나드 허만의 재즈성 음악 등이 혼연일체가 된 거의 몽환적이다 시피 한 피범벅 뉴욕 느와르다. 버나드 허만은 ‘사이코’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 여러 편의 히치콕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영화의 음악이 그의 유작이다.

폭력적인 ‘구세주의 환생’이라 불리는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 빅클(드 니로)은 베트남 전 참전 재향군인. 정크 푸드를 먹고 멍한 눈으로 TV를 보고 일기를 쓰는 트래비스는 친구도 애인도 또 아무 사회적 관계도 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노바디’다. 그는 밤잠을 못 자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뉴욕의 밤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창녀와 약물 중독자와 알콜 중독자들로 우글거리는 타임스 스퀘어를 차창 밖으로 관찰하면서 언젠가 이 인간 지스러기들을 말끔히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날 트래비스는 대통령 선거 후보 출마자를 위한 자원 봉사자인 아름다운여인(시빌 쉐퍼드)을 보고 감정을 느끼나 데이트 첫 날 여인을 포르노 영화관으로 데려가면서 스스로 애정에 대한 거부 동작을 취한다. 이어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더럽고 추하고 사악한 것들을 말끔히 제거하는 자칭 ‘구세주’ 노릇을 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12세난 창녀(조디 포스터). 트래비스는 이 소녀에게 애정과 함께 보호 본능을 느끼면서 소녀를 악의 늪에서 구출하기 위해 피범벅 총격전을 벌인다.


도시 속 소외감에 시달리는 고독한 남자의 정신착란적인 광기를 파헤친 성격 탐구영화로 드 니로가 아파트 거울 속의 자기를 보고 권총을 겨누면서 “너 내게 말하는 거니”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또 드 니로는 피의 살육을 시작하기 전 머리를 박박 밀고 모호크 인디언 헤어스타일을 하는데 이는 실제로 머리를 민 것이 아니라 분장을 한 것이다.

1976년 개봉 당시인 베트남 전 이후의 미국의 분위기를 여실히 묘사한 영화로 지나치게 폭력적이어서 거부 반응을 일으킬 사람들도 있겠지만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하비 카이텔 공연.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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