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혼란과 공포의 성격 드라마

2021-03-05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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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아버지‘’ (The Father) ★★★★½(5개 만점)

▶ 치매라는 어두운 소재를 극복, 오락영화의 재미마저 더해져…주인공 홉킨스의 연기도 볼만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혼란과 공포의 성격 드라마

안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안소니와 요양원 입원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겪는 극도로 격한 혼란과 공포를 근접하고 마치 자기 것처럼 느끼게 하는 깊숙한 성격 드라마로 이 영화로 감독으로 데뷔한 극작가 플로리안 젤러가 자신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든 심오한 작품이다. 참담한 내용인데도 잘 만든 오락영화의 재미마저 느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안소니 역의 안소니 홉킨스의 변화무쌍한 연기 때문이다. 감탄을 금치 못할 연기다.

자기 딸을 비롯해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몰라보고 아울러 주변의 일들과 상황에 대해서도 그 실제적 현실감을 잃어가는 노인이 이에 당황해 자기 존재를 깨닫고 타인에게도 그 것을 확인시키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영화는 이와 함께 치매를 앓는 부모를 둔 자식들의 어떻게 그들의 부모를 돌보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안소니의 딸 안(올리비아 콜만)이 아버지를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자기 삶을 지켜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한다.


감독은 안소니를 계속해 혼란 속에 몰아넣으면서 심리적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데 그 것을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들면서 마치 미스터리 스릴러를 보는 기운을 조성한다. 그러나 영화의 본질은 사랑과 연민이라고 하겠다.

런던의 고급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80세의 안소니는 클래시칼 뮤직을 좋아하고 유난히 손목시계에 집착하는데 그는 이 시계를 마치 자신의 보호 장치처럼 여긴다. 보기엔 멀쩡한 안소니는 치매 증세가 심각해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안이 데려온 간병인에게 고약한 성질을 부려 내쫓는다. 그런데 안은 새 연인을 만나 파리로 이주하기 전에 아버지를 요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 안은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이에 크게 실망하는 안소니.

안이 아파트를 나간 후 문이 열리면서 낯선 남자 폴(때론 마크 가티스가 때론 루퍼스 시웰이 같은 역을 한다)이 들어와 마치 자기 집처럼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그리고 안소니에게 자기는 안의 남편이라고 말한다. 이에 안소니는 안이 이 외간 남자를 자기 아파트에서 살게 하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한다. 이어 안이 들어오는데 안소니가 보기엔 딸이 아닌 다른 여자(올리비아 윌리엄스)다. 안소니는 자기 딸과 간병인을 혼동하기 일수다. 안이 마지막으로 데려온 간병인이 젊고 아름다운 로라(이모젠 푸츠)로 안소니는 로라가 좋아 그의 앞에서 춤까지 추면서 재롱을 떤다.

영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소니의 현실감의 분열 현상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이와 함께 안소니가 이런 혼란에서 자기 존재감과 주위 모든 것에 대한 이치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보는 사람의 신경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렇게 순간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분노와 한과 허점과 같은 안소니의 다양한 마음 상태를 홉킨스가 마치 물 흐르듯이 유연하고 가뿐하게 연기한다. 그리고 콜만이 이에 대조되는 차분한 연기로 둘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이 실내에서 진행돼 실내극 같지만 보는 사람을 화면 안으로 끌어당겨 안소니의 혼란을 함께 경험케 만드는 실팍한 작품이다. PG-13 등급.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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