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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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無盡燈)] 내게서 나간 것은

2021-02-25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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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에선 이른 봄에 노란 수선화가 피지만, 한국의 겨울 끝자락 2월에는 차가운 눈 속에서 노란 복수초가 핀다. 복 복자, 수명 수자를 따서 복과 명을 길게 받으라는 뜻이 있다는데, 한동인 이 복수를 원수, 원한을 깊는, 저 '복수 한다'라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이 있다. 얼음을 뚫고 나오는 그 힘찬, 그 서슬퍼런 강인함이, 꼭 복수를 하고야 말히라, 처럼 보여서, 참 이름도 잘 지었다, 했었다. 비록 작고 여리지만 차디찬 얼음눈을 뚫고 나오는 그런 강한 힘이라면, 복수를 반드시 하고도 남겠다, 싶었다. 시련을 이겨낸 존재는 그 존재가 무엇이든 강하기 마련이니까. 이 중이 수틀릴 때 잘 하는 말로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 가 있다. 인연법상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이치지만, 이 말을 하면 모두 웃는다. 은혜라면 몰라도 스님이 원수 갚는단 말을 하는 게 농담처럼 들리는 것 같다. 농담 아니다. 인연법상 그게 뭐든, 받은 건 반드시 갚아야 한다. 은혜를 갚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실은, 사람이 한다기 보다는, 세상 이치가 왔던 걸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뿐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비가 내려 바다로 가고, 바다 에서 올라간 구름은 다시 비가 되고...자연은 반드시 온자리로 돌아간다. 자연만 그럴까. 돈내고 가방을 사면 가방은 언젠가 쓰레기가 되고, 쓰레기는 썩어 흙이 되고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고...가방을 산 이가 그 열매를 먹고. 이렇게 가방은 다시 버린이에게로 돌아온다. 이처럼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내게로 돌아온다. 저 가방을 무엇으로 바꾸든 마찬가지다. 내가 내놓은 선함은 더 큰 선으로 내게 돌아온다. 무엇이든 돌아온다. 인연법이고 인과응보고 그렇다. 퇴색한 언어 같지만 역연한 것이다. 요즘 이들은 이걸 믿지 않는다. 아름다운 발리섬이 쓰레기섬이 되고, 물고기들 뱃속에서 프라스틱이 나오고 해도, 그것이 내게서 나간 것이고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안 믿는다. 도대체 요즘 사람들은 뭘 믿고 사는 것일까?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소멸되고 있는 느낌이다. 인연법의 그 지중함을 안 믿고 인과응보도 안믿는다. 착하게 살면 손해고 악한 놈이 더 잘산다고 한다. 이게 바로 인과응보인 것이다. 악한 놈이 잘사니까 세상이 악해지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 저항없이 사는 게 선한 것 절대 아니다. 그게 틀렸다고 해야 선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선한 이가 혹여 해를 당하면, 무시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대우를 해주는 세상, 힘이 되어주고, 고마움이 되는 세상이 되면, 그 세상은 선해진다. 돈 많고 악하게 사는 게 잘사는 거라 믿는 이가 많으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악을 외면한 인과응보로 악한 세상에서 더 힘들게 살아야 한다. 내게서 나간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부메랑처럼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 많은 이들이 자꾸 이런저런 로켓을 우주로 쏘아올리는 걸 보니, 장차 지구를 떠나려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머잖은 미래엔 모두 화성에 가서 감자 농사라도 지으려는 걸까? 막대한 돈 들여 자꾸 지구 떠날 생각을 말고, 서 있는 이곳, 지구 쓰레기 깨끗이 치우는 데 먼저 돈을 쓰면 좋겠다. 아니, 가는 건 그들 자유니 좋다. 다만 부의 축적은 결국 지구 사람들이 이루어줬는데, 그러는 동안 지구 환경이 심각한 위기에 도달했는데, 여기, 지구를 살리는 데 신경을 좀 더 많이 썼음 좋겠다. 지구 환경문제가, 그 중 특히 사람의 정신 환경 문제가 날이 갈수록 너무 걱정되는 이 중이다. 우리 불자라도 세상에 자비를 많이 내주어, 선한 세상이 되게 하자. 얼음속에서도 복수초 피듯이, 차가운 세상에서도, 따뜻하게 선한 꽃을 피우고, 세계인의 복과 수명을 진심으로 빌어주자. 선으로 악을 밀어내는, 아름다운 복수를 하자.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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