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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더 무서운 뇌전증

2021-02-23 (화)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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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만 잘 먹으면 70~80% 정상 생활

뇌전증(腦電症ㆍepilepsy)은 사회적 편견이 심한 병이다. 특유의 경련과 흥분 상태 탓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사회적 편견을 줄이기 위해 병명을 ‘간질’에서 이같이 바꿨다. 심심찮게 ‘뗑깡부리다’라는 말도 일본의 예전 뇌전증 병명인 ‘뗑깡(癲癎)’에서 유래됐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온몸이나 팔다리가 굳어지면서 규칙적으로 떠는 증상이 나타난다. 눈이 돌아가거나 거품을 문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입안에 분비물이 많이 생기며, 멍해지기도 한다.

국내에서 뇌전증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18년 29만7,635명으로 실제 환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뇌 질환 가운데 치매(70만명), 뇌졸중(60만명)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비정상적 뇌파 때문에 발생

뇌전증은 비정상적인 뇌파 때문에 발생한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뇌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전류가 흐르면 발작이 나타난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수히 많다. 특별한 원인 없이 반복적으로 발작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뇌전증 원인은 유전ㆍ분만 중 뇌 손상ㆍ뇌염이나 수막염 후유증ㆍ뇌가 형성되는 중에 문제가 있을 때ㆍ뇌종양ㆍ뇌졸중ㆍ뇌혈관 기형ㆍ뇌 속 기생충 등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원인을 알지 못한다.

뇌전증 진단은 발작에 대한 병력 청취로 시작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발작에 대한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 환자가 기억하기 어려우므로 주변인의 진술과 동영상 촬영이 도움이 된다. 또한 동반 질환이나 가족력, 신경학적 진찰을 통해 신경 결손을 확인한다. 뇌파 검사, 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신경영상 검사로 뇌전증이 발생하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다.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원인에 따른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을 때가 많지만 최근 다양한 진단적 기법이 개발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길이 열렸다.

◇발작 수 차례 반복되면 응급실 찾아야

뇌전증 발작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환자를 안전한 곳에 눕힌 후 몸을 죄는 벨트ㆍ넥타이 등을 느슨하게 해야 한다. 특히 숨을 제대로 쉬도록 기도를 막히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에 이물질이 있으면 반드시 단단한 기구를 사용해 빼내야 한다. 상비약 등을 입으로 투여하다간 흡인성 폐렴이나 기도 폐색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발작이 생겼다고 곧장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몇 분 이내에 자연적으로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 차례 이상 발작이 계속 반복되거나 의식의 회복 없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뇌전증지속증’이라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므로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 발작은 신경세포의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이상 흥분 현상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억누르는 약물을 쓰거나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병소를 제거하면 대부분 조절이 가능하고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약물ㆍ수술 치료로 대부분 정상생활

뇌전증 치료는 약물과 수술 치료로 나뉜다. 뇌전증 발작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항경련제 복용이다. 임희진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 환자 10명 중 7~8명은 약으로 증세가 호전 또는 관해(寬解)된다”며 “따라서 의사와 충분한 상담 후 최소 2~5년 이상은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뇌전증 발작의 종류와 뇌전증 증후군에 따라 사용하는 약물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신경과 전문의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최근 뇌전증 치료를 위한 약물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20가지가 넘는 다양한 메커니즘의 항뇌전증 약물이 나왔다.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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