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인공을 증오하면서 응원하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

2021-02-1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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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잘 돌봐 드리지요’ (I Care a Lot) ★★★★½(5개 만점)

▶ 법정 지명 보호자 제도를 비판, 파이크의 존재와 연기가 압도적

주인공을 증오하면서 응원하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

말라(오른 쪽)가 파트너 프랜과 함께 제니퍼를 양로원에 입원 시키고 있다.

고약하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블랙 코미디이자 독기가 서린 범죄 스릴러로 철저하게 무자비하고 사악한 주인공을 증오하게 되면서도 아울러 그에게 빨려들어 가면서 그의 악행을 거의 응원하게까지 만드는 못된 영화다. 영화는 금전만능주의를 좇는 자본주의와 의탁할 사람이 없는 노약자 갈취 그리고 이들 노약자를 돌보는 법정 지명 보호자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도 있다.

말라 그레이슨(로자먼드 파이크)은 아무도 의탁할 사람이 없이 혼자 사는 돈 많은 노약자들의 법정 지명 보호자로 노약자들을 양로원에 들여보낸 뒤 이들의 돈과 집 등 재산을 자기 것으로 취하는 범법자. 말하자면 부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인데 말라는 ‘페어 플레이’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가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금발 단발 스타일에 고급 옷을 입고 가짜 미소를 짓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라의 범죄 동료들은 그의 동성애 연인 프랜(에이자 곤잘레스)과 노약자들을 진단해 이들을 양로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결과를 법정에 제공하는 여의사 에이모스(알리시아 위트). 말라 일당은 노인들을 같은 양로원에 보내면서 양로원으로 부터 뇌물을 받는다.


말라의 다음 제물은 아름다운 집에서 혼자 사는 무의탁 노인 제니퍼 피터슨(다이앤 위스트). 말라는 멀쩡한 제니퍼를 치매 증상이 있다고 주장, 그의 법정 지명 보호자가 된 뒤 제니퍼를 강제로 양로원에 들여보낸다. 그러나 말라는 이번에 자신의 제물을 잘 못 골라도 아주 잘 못 골랐다.

얼마 후 말라 앞에 변호사 딘 에릭슨(크리스 메시나)이 나타나 말라를 위협하고 또 한편으로는 뇌물을 주겠다고 회유하면서 제니퍼를 양로원으로 부터 퇴원시키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말라가 이에 호락호락 넘어갈 여자가 아니다. 우선 말라는 제니퍼를 방문, “당신 누구야”라고 묻자 제니퍼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난 네가 저지를 실수 중에 최악의 실수지”라고 대답한다.

제니퍼가 누구인가 하니 성질이 불같고 위협적이요 무자비한 대규모 범죄 집단의 두목 로만 루니오브(피터 딩클리지)의 어머니. 로만은 졸개들을 시켜 제니퍼를 양로원으로부터 빼내려고 시도하나 말라의 즉각적인 대처로 실패한다. 이렇게 말라가 로만의 요구에 콧방귀를 뀌면서 대응하자 가차 없는 유혈폭력이 발생한다. 과연 악인은 지옥으로 가는 것일까. 플롯이 배배 꼬이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유혹적인 교활한 영화다.

영화를 혼지 짊어지다 시피 하는 것이 파이크. 사악하고 간교하고 무자비하고 냉정하면서도 가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그의 존재와 연기가 압도적이다. 그의 영화 ‘곤 걸’의 역과 닮은 역으로 말라야 말로 가증스러운 악행을 저지르는 악녀로 그의 악행에 분노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그가 최악의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바라게 된다. 파이크는 이 역으로 2021년도 골든 글로브 주연상(드라마 부문) 후보에 올랐다. 파이크에 맞선 딩클리지의 단호하면서도 좌절감에 시달리는 연기가 좋다. J. 블레이크 감독(각본 겸).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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