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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1년, 북가주 한인사찰들은 지금

2021-02-18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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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1년, 북가주 한인사찰들은 지금

코로나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이 쉼표에 묶인 지난해 봄~여름, 새크라멘토 영화사가 수년만에 새로 다듬어 선보인 홈페이지 중 ‘자연으로부터의 명상(Meditations from Nature)’ 코너의 최근 화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비드19), 세칭 우한폐렴으로 불리는 괴질이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지 꼬박 1년이 지났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과 발빠른 대응국을 중심으로 코로나백신 집단접종이 시작됐지만 사람 사는 세상 거의 모든 곳에서는 아직도 몸서리치는 고투 내지 사투가 계속되고 있다. 북가주 한인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뿌리를 내린 한인사찰들 사정은 더하다. 코로나 이전에도 사정이 그다지 녹록하지 않았으니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샌프란시스코지역 두 사찰 여래사와 불광사는 나란히 주지 없는 절이 됐다. 북가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한인사찰 여래사는 2년 가까이 주지소임을 맡았던 광전 스님이 지난해 8월말 건강상 이유로 귀국한 뒤 후임자를 찾지 못한 채 반년이 다 됐다. 1980년 10.27법난 때문에 생겨난 인연 등 때문에 해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 못지않게 성대하게 봉행됐던 10월말 개원기념법회는 정작 40주년인 지난해에는 하는 둥 마는 둥 지나갔다. 속리산 법주사에 주석중인 창건주 설조 스님은 새 주지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나 해외생활 부담과 코로나 사태 등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불광사는 단순히 주지 공석을 넘어 이름뿐인 절이 된 게 어언 10년이다. 거의 항상, 문은 닫혀 있고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법회도 없다. 10여년 전까지 일요 정기법회 참가자만 수십명을 헤아리던 신도들은 대부분 다른 절로 뿔뿔히 흩어졌다. 다만 불광사의 미래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떠돌 뿐이다. 지난해 여름 송운 스님이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으로 추대됐을 때 기자가 불광사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스님측은 법적 대응을 암시하는 경고를 곁들여 불광사의 영원한 존속과 번영을 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스님측 주장이 언제 실행에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이스트베이지역에도 한인이 세운 부처님도량이 둘 있다. 리버모어 고성선원(원장 진월 스님)과 오클랜드 돈오사(주지 돈오 스님)다. 둘 다 2016년에 개원했다. 지난해 8월 대형산불 때 소실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던 고성선원은 지금, 잠시 비어 있다. 진월 스님이 남가주 금강선원(주지 범휴 스님)에 머무는 까닭이다. 그곳에서 설날법회 특별법문을 했다. 스님은 동안거해제일인 보름 이후에 고성선원으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 조용한 기도도량을 표방하며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돈오사의 경우 소식을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돈오 스님은 4년 전 이맘 때 본보와의 인터뷰 이후 수차례 인터뷰나 기고 요청을 사양하곤 했다.

실리콘밸리지역에도 두 한인사찰이 있었다. 이제는 하나다. 1988년 개원한 산호세 정원사(주지 지연 스님)다. 십수년 전 여러 재가불자모임이 줄을 잇는 등 북가주 한인불자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던 곳이다. 불교문화계에 발이 넓은 스님 덕에 한국에서도 좀체 구경하기 힘든 범패공연 등 수준급 공연이 자주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가자모임이 시들해지고 코로나사태가 겹치면서 이제는 스님과 오랜 신도들의 조용한 기도도량이 됐다. 1997년 산타클라라 주택가에서 문을 연 대승사는 현 주지 설두 스님 부임 이후 생활공동체형 이전불사 청사진을 안고 길로이 임시법당으로 일단 옮겼으나 행정관청의 건축허가가 마냥 늦어지는데다 코로나 악재까지 터지면서 부득이 궤도를 수정, 규모를 줄여 제3의 장소를 물색중이다.

북가주의 가장 오래된 한인사찰(1973년 개원)이자 미주 최초로 한국식 대웅전(1988년 소실)을 갖췄던 카멜 삼보사는 코로나 이전에도 법회 때 아니면 그저 새소리 바람소리 산짐승소리 풀벌레소리 개울물소리 정도였는데 법회마저 중단되고 따라서 신도들 발길마저 뜸해졌으니, 게다가 주지 대만 스님은 바깥출입을 삼간 채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 참선에 쏟고 있으니(제2차 3년결사중)... 말조차 짐된다며 전화통화마저 꺼려했던 스님은 코로나시국을 맞아서는 간간이 텍스트메시지나 이메일 등을 통해 외부소통을 꾀하고 있다.

1992년 렌트사찰로 시작한 새크라멘토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는 현 장소로 이전한지 꼭 10년이 됐다. 달랑 집 한 채,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를 드넓은(5에이커) 잡풀밭, 녹슬고 망가진 농기구 따위를 안고 곧 쓰러질 듯 간신히 버티고 있던 양철창고 등 ‘그날의 영화사’가 10년 새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본보에도 띄엄띄엄 토막토막 소개된 바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한마디로 이것이다. 코로나의 가공할 심술 와중에도 영화사의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행여 더벅머리처럼 될세라 제때제때 파르라미 깎은 풀밭, 철마다 꽃이 피고지고 새들이 즐겨찾는 앞뜰뒤뜰, 새로 지은 아담한 대웅전, 그냥 멍 때리고 앉아만 있어도 법음에 잠길 것 같은 소요유, 늘 하늘 닮은 그림자를 비추는 작은 연못 등 몰라보게 달라진 ‘오프라인 영화사’ 못지않게 알뜰하고 풍요로운 ‘온라인 영화사’(www. younghwazencenter.com)를 새로 다듬어 선보였다. 이 역시 지난해 여름 코로나 시대 부처님 도량의 모범적 진화 사례로 본보에 소개됐다.

한편 마리나시티 우리절은 개원 3년여만인 지난해 11월 문을 닫았다. 우리절을 이끈 운월 스님은 대신 지난해 봄 남가주 라노에 마련한 제2의 우리절을 가꾸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태수 기자>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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