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인들 믿음을 지키며 예의로운 사람 되는것이 기본
▶ 교회가 민족 , 종교의 벽 넘어 하나님과 이웃 사랑 회복해야
박상일 교수. 버클리 GTU 설교학 교수이며 알바니 미 연합감리교회 담임 목사.
미국에 30여년을 살아 오며 그간 투표를 여러 번 했지만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물론 정책도 중요했겠지만,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성품을 특히 따진 것 같다.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선거기간 내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른 단어 하나가 있는 데 그것이 “Decency” 였다. 이 말의 사전적 뜻은 ‘예절,’ ‘품위,’ ‘관대함’ 등으로 나와 있지만, 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이라는 틀 안에 이 말로 넣고 싶다. 전에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던 분들도 많은 분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 분의 평소 언행이 사람으로서의 기본에 못 미친다고 보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뿐 아니라, 작은 단체, 심지어는 개인과의 관계에서도 이 ‘기본’은 너무나 중요하다.
한국 개신교는 나의 어머니와 같다. 그래서 고국을 떠나 있어도 오늘 내가 있게 해 준 한국교회에 늘 감사하고 위해서 기도한다. 한국 개신교인들의 뜨거운 기도, 복음에의 열정, 선교에의 헌신은 하나님의 크신 선물이고, 짧은 역사 속에도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일구게 하였다. 이 열매는 미국 내 주요 신학대학원에서 만나는 수 많은 한국 유학생들, 전 세계 어느 오지를 가도 만나게 되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존재를 통해 확인 된다. 분명, 한국 교회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축복임에 놀랍기만 하다. 문제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일탈 및 몰상식한 교인들이 타종교인 및 타종교 시설에 행한 일련의 폭력과 파괴 행위가 한국 교회 전체의 품격에 큰 손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소식들을 접하면서 이 분들이 기독교인으로서 ‘기본’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갖는다.
개신교 신앙의 핵심은 믿음을 통한 구원이다(행 4:12, 롬1:17, 3:28, 갈2:16). 예수를 구원자요 만물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이 성서적 믿음은 초대교회 설교자들은 물론 종교개혁자들과 선교초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전해져 우리 모두의 영적인 피에 흐르고 있는 귀한 유산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지구상 온 민족과 나누라고 하신 예수님 가르침을 ‘대사명’(Great Commission, 마28:19, 막16:15-16, 눅24:47, 요20:21)이라고 부른다. 또 이를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하나님 사랑 및 이웃사랑’을 ‘대명령’(Great Commandment, 마 22:37, 막12:30-31, 눅10:27, 요13:34-35)으로 부른다. 문제는 전자는 후자를 통해서만 진정성이 있고, 후자를 무시한 전자는 오히려 선교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모우(Richard Mouw)는 그의 책 Uncommon Decency에서 “현대인의 문제중 하나는 시민의식(civility)을 갖춘 이들은 믿음의 확신이 없고, 믿음의 확신이 있는 이들은 종종 시민의식이 없다”(12)는 자조적 언급을 한다. 여기서 시민의식은 공공장소 에서 지키는 기본적 예의를 말하며, 모우는 오늘 기독교인들이 과연 “믿음을 지키며 동시에 예의로운 사람들이 될 수 있는지”(9)를 묻는다. 이는 오늘의 많은 신앙인들이 인간의 ‘기본’보다는 얼마나 ‘도그마’를 우선 하며 살아 가고 있는 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복음서의 주요 내용은 예수님을 믿는 것 보다 그 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 (마19:16-30, 막 10:17-21, 눅18:18-30)이며, 그 가르침과 삶의 내용은 민족과 종교 조차도 넘어서 베푸시는 사랑이다. 이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의 뜻이며, 단순히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을 넘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부담스러운 명령이다. 동시에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성찰하게 해주는 도전의 말씀이기도 하다(마7:21, 약2:17).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타종교인들 혹은 나와 생각과 이념이 다른 분들을 적대시하는 행동은 그게 얼마나 반신앙적인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겪어 보지 않은 세계는 우리에게 늘 두려움과 경계심의 대상이다. 따라서 다른 민족, 문화권, 혹은 타종교인에 대해 주저함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과의 만남을 사람과 사람 사이로 ‘기본’을 갖추며 만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은 우리 인식의 세계를 바꾸어 준다.
박상일 교수가 강의하고있는 버클리신학대학원 캠퍼스
3년 전의 일이다. 안식년을 맞아 인도 여행길에 올라 먼저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자리를 앉는데 옆 좌석의 남자가 나에게 “제 이름은 라만입니다”. 제가 한국 분이 제 옆 좌석에 앉기를 위해 기도했는데 다행입니다. 실은 제가 인도에 계신 부친의 병간호를 위해 델리로 가는 중인데, 한국에 먼저 들러 하룻 밤을 묶게 되면서, 혹시 서울 관광을 잠시만이라도 하고 싶은데 안내를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세요? 저도 인도를 평생 처음 가는데, 당장 공항에 내리면서 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고 고민 중이었는데 저도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라만과 시작된 나의 여행길은 어쩌면 내가 그 동안 갖고 있던 무슬림교도에 대한 경계심과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 주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우리가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해 각각의 종교, 음식, 정치 등 기억도 할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비행기는 인천 공항에 도착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서울 시내 관광 안내자로 라만과 몇몇 동행 인도인들과 함께 서울의 밤거리를 걸으며 자세한 인도 여행 안내를 받았다. 또 델리를 떠나 남부 지역 체나이와 케랄라를 다닐 때도 수시로 문자를 보내면서 나의 안전을 챙겨준 라만의 친절함과 사랑의 배려를 잊을 수 가 없다.
교육보다 인간미 넘치는 배려 기억
리차드 로어(Richard Rohr)는 그의 책 Eager to Love에서 진정성이 담긴 인간미 넘치는 사랑과 배려는 수 년간의 종교 교육보다도 사람들의 심성에 더 크게 기억되므로 이런 사랑에 바탕한 “종교색 없는 기독교”가 가장 종교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든 “나는 그들보다 더 낫고, 거룩하고, 높고, 하나님께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십중팔구 다른 이들을 향한 오만함 혹은 폭력적 태도를 갖게 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로어는 그 해결책으로 우리 내면의 “작은자 털어내기”를 제안한다 . 방법은 하나님 사랑의 체험이며, 이 경험은 교만함 대신 “나도 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를 갖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로어는 이런 경험만이 종교가 가진 폭력성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믿고, 크리스찬들이 예수를 따라 자기의 이미지를 바꾸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은 단지 내 죄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의 차원을 넘어서 타종교인들을 포함한 만유를 품으시는 만유 안에 계신 우주적 주님이시기 때문이다(골 3:11)(219).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귀한 선물이지만 참으로 부담스런 길이다. 한 없이 내 속을 비우고 말처럼 쉽지 않은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요일 4:7-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복음이 진리이고 그 길 속에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물론 세계 어디를 가든 계층간 이념 간의 갈등으로 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신앙의 “기본”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다시 마음과 뼛 속까지 회복해야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예수로, 사랑의 실천자로, 각 자의 맡은 자리에서 남들을 포용, 이해,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다면, 2021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상처 치유는 물론, 이 땅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땅 끝까지 전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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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일 교수, 목사 (Graduate Theological Union, Berke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