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누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될까요?”
얼마 전 받았던 충격적인 문자 메시지의 내용이다. 의사당 폭력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속에서도 연방의회가 조 바이든이 승리한 대통령 선거결과 인증 절차를 마무리한 지 이미 10일이 지난 뒤였고, 대통령 취임식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간 SNS에서 자신이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며 바이든의 당선 결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적이 있어 다소 생뚱맞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문자 메시지가 내포한 함의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지난 6일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의사당 폭력 사태 이후 취임식 당일 무장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았고, 트럼프가 계엄령을 발동해서라도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저지할 것이라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민 1세대인 이 사람은 트럼프의 선거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가 뒤집혀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아직까지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대선 이후 이어진 수십여 차례의 선거소송에서 패배했고, 공화당의 많은 의원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사법기관과 관련 부서들이 대선결과를 인정했지만 이들의 믿음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20일 트럼프가 마침내 퇴장했다. 그의 등장도 충격적이었지만 그의 퇴장도 역시 트럼프답게 드라마틱했다. 미 역사상 가장 문제적 대통령으로 재임기간 하원에서 두번이나 탄핵을 당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쓴 그가 미국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는 뒷모습도 충격적이었다.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인사도 의미심장하다. 취임식 날 아침 트럼프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올 것이다”
이번 대선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독해방식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한가지 일치하는 지점은 이번 선거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트럼프를 축출하기 위해 뭉친 다양한 계층과 이념적 층위를 가진 기존세력들의 ‘반트럼프 연합군’과 트럼프의 대결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반트럼프 연합군은 바이든을 내세워 승리했지만 트럼프 자신의 성적만을 보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다. 2016년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 지지층을 확보해 트럼프에 동조하는 세력은 오히려 확장돼 트럼프를 앞세운 트럼프주의자들은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2016년 선거보다 1,122만표를 더 얻었다. 오히려 흑인과 히스패닉 등 공화당 취약계층에서 보수성향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더 확보했으며, 강력한 민주당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LGBT 그룹에서도 지지세가 늘었다. 트럼프를 가장 혐오하는 계층으로 지목된 백인여성 그룹에서 조차 트럼프 지지율은 53%에서 55%로 올라갔다.
트럼프는 떠났지만 트럼프 지지세력은 더 단단하고 넓어져있는 것이 현재 미국이 처해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올 것”이라는 마지막 말은 꼭 트럼프 자신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거대한 세력으로 부상한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도 그 귀환의 주체가 꼭 트럼프일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자신들의 분노와 불만을 폭발시킬 단지 통로이자 매개체였을 수 있어서다. 트럼프의 퇴장이 마지막이 아니며, 트럼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가 트럼프가 퇴임하자마자 등을 돌리고 그를 비난한 것도 그들에게 트럼프는 단지 매개체였을 뿐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없어도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이들이 트럼프를 대신할 제2의 트럼프를 찾아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시대를 맞은 미국이 분열과 갈등을 표면적 봉합에만 그치고 근본적인 변화에 눈감는다면 또 다른 제2의 트럼프는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
김상목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