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걸작 무성영화로 노동계급의 좌절감을 시적^비감 깊이 묘사

2021-01-22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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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웃음’ (The Last Laugh·1924) ★★★★★(5개 만점)

▶ 화려한 제복 입고 직업에 충실한 도어맨 화장실 담당으로 변하며 초라한 인간으로 변신…백만장자의 유산 받으며 인생‘전화위복’

걸작 무성영화로 노동계급의 좌절감을 시적^비감 깊이 묘사

사기가 저하된 에밀 야닝스가 호텔 화장실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 감독 F.W. 무르나우가 연출한 걸작 무성영화로 영화에서 이름 없는 호텔 도어맨으로 나오는 에밀 야닝스의 위압적이면서도 민감한 연기가 뛰어난다. 노동계급의 좌절감을 시적이요 비감 깊이 묘사한 훌륭한 성격탐구영화다.

고급호텔의 나이 먹은 도어맨이자 포터인 야닝스는 금장식 단추를 단 화려한 제복을 입고 마치 장군처럼 으스대는 직업에 충실한 사람.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왕’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그가 손님의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애쓰는 것을 본 호텔 매니저가 호텔 이미지도 생각하고 또 야닝스를 편하게 해주려고 그를 지하 화장실로 내려 보낸다. 초라한 옷을 입은 야닝스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손님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면서 정신과 사기도 지하로 깊숙하니 내려간다.


절망감과 좌절감에 빠진 야닝스를 동료들과 친척들까지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한 때 자랑스러웠던 남자는 초라한 인간이 되고 만다. 이렇게 신분 상실로 내면이 부식되었던 야닝스는 뜻밖의 일로 마지막 웃음을 웃게 된다.

야닝스는 자기가 지키는 화장실에서 쓰러져 죽은 백만장자의 유산을 받으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의기양양하게 올라온다. 죽은 부자가 생전에 자기의 재산을 전부 자기가 죽기 직전에 본 사람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했기 때문이다(독일어 제목은 ‘마지막 남자’다.) 졸지에 백만장자가 된 야닝스는 자기가 일하던 호텔에서 종업원들을 위해 성대한 파티를 베풀고 후한 팁까지 남긴 뒤 마차를 타고 호텔을 떠난다.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가 인상적인데 특히 자기 신세를 비관한 야닝스가 술에 취해 사물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일그러져 보이도록 찍은 촬영이 일품이다. 이 영화로 세계적 스타가 된 야닝스는 무르나우와 함께 할리웃으로 건너와 몇 편의 영화에 나왔으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 했다. 무르나우의 또 다른 걸작 무성영화로는 재넷 게이너가 나온 ‘두 인간의 노래’라는 부제가 달린 ‘선라이즈’(Sunrise·1927·*****)가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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