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이 2번째로 연방 하원에서 가결됐다. 의회는 미국의 현직 대통령에게 내란 선동의 책임을 물었다. 평소 “트럼프가 무슨 구세주도 아니지만 바이든 보다는 100배 낫다”고 믿고 있는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 그의 생각은 어떨까. 탄핵 표결 얼마 전이었다.
“우선 의사당에 난입한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아니예요. 의사당을 부순 것은 안티파(급진좌파)와 BLM 추종자들이었어요. 경찰이 에스코트해 들어갔어요.”
“평화적인 권력 이양을 약속했지만 그 대상이 바이든은 아니예요. 트럼프 2기에 넘긴다는 말이죠. 두고 보세요. 트럼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바이든이 들어서게 된다면 경제는 엉망이 돼요. 엄청난 인플레이션에다 은행이나 은퇴구좌에 있는 돈은 소용이 없어요. 금이나 은을 사 두세요. 유튜브에서 크리스틴 오스틴 피츠라는 사람의 말을 꼭 들어 보세요.”
“메인 미디어는 정말 엉터리죠. 거의 안 봐요.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은 순식간에 삭제되요. 코로나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구요. 언론검열과 가짜 뉴스가 너무 심해요.”
이런 생각을 전하는 그는 북가주의 1.5세 치과의사, 의료관계 세미나를 열심히 찾아 다니며 공부하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는 여전히 이번 선거가 도둑맞은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연방과 각 주 법원이 잇달아 트럼프 진영의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제 주위에서는 다 믿는데, 그쪽은 안 믿으세요?”. 그는 반문했다. 똑같은 사태를 접해도 생각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지난 20~30년 새 한인사회에 확연하게 변한 것중 하나는 살인사건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지던 리커 마켓 무장강도 사건에다, 한인끼리의 살인극도 많았다. 가족관계의 갈등으로 5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참극도 벌어졌었다. 비즈니스 다툼과 치정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살인사건이 나면 우선 피해자 쪽부터 가게 된다. 가해자 쪽보다 이야기 듣기가 용이한 데다, 숨진 사람의 사진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가 없거나 활용도가 미미하던 때여서 가족이 아니면 주 차량국에 등재된 운전면허 사진밖에는 없었다. 피해자 쪽 이야기를 듣고, 경찰 확인을 받으면 사건의 윤곽은 잡힌다. 가해자 쪽은 지나쳐 가기 쉽다. 대부분 접촉이 어려울 뿐 아니라 시간에도 쫓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사리 가해자 쪽 이야기를 듣게 되면 거짓말처럼 생각이 바뀌게 된다. 그림이 완전히 뒤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미만. 가해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간다. 무엇보다 사람을 죽였지 않은가. 하지만 주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게 아니다. 피해자야말로 진즉 어떻게 됐어야 할 사람이다. 이런 극적인 반전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 스스로에게 놀라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습관 하나가 생긴다. 어떤 분쟁이든 한쪽 말은 반만 믿게 되는 것이다. 상대는 열심히 말하는데 반은 에누리해서 듣고 있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나마 그게 사실에 가까울 때가 많다.
말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그것만 알기 때문에 그것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걸 전부인 양 주장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어느 쪽 정보에 노출되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승부는 일단 거기서 난다. 양심에 따라 하겠다? 양심은 아는 것에만 작동하는 것이다.
인식의 공장에서는 주어진 재료들을 가지고 상품처럼 확신을 찍어낸다. 하지만 재료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래떡만 사서 떡볶이를 만들면 어묵이 들어가지 않은 밋밋한 떡볶이만 만들 수밖에 없다.
종말론에 빠져드는 사람은 평소 신앙이 좋다는 말을 듣던 사람들이다. 건성건성 믿는 사람에게는 종말론도 없다. 이단 사설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순수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까탈스럽고, 의심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저 허황된 늪에 빠질까 의아하지만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한쪽 정보에만 노출되고, 거기에다 자신의 이해관계, 성향, 믿음 등이 더해지면 이건 넘사벽, 철옹성이 된다. 인간 정신의 위대한 승리도 있지만 한없이 허약한 것이 인간 정신이기도 하다. 일격에 무너지기도 한다. 취약성은 순식간에 드러난다. 특히 일방적인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요즘 같은 때는.
이른바 음모론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선입견을 만족시키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는 말은 전혀 새롭지 않다. 팬데믹 속에서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 지금은 인포데믹(infodemic), 잘못된 정보의 대유행 시대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 그것은 어디까지 사실인 것일까. 자문해 볼 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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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