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다 꿈을 꾸는 단계에서는 운동신경이 억제돼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꿈을 꾸다가 갑자기 발길질을 하거나 고함을 친다면 우울증과 감정표현불능증을 앓을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상암ㆍ김효재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팀은 꿈을 꿀 때 이상행동을 하는 렘(REM)수면 행동 장애 환자와 일반인의 정신 건강 상태를 분석한 결과, 렘수면 행동 장애가 있으면 우울증과 감정표현불능증 유병률이 각 1.5배, 1.6배 높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수면 과학 전문지인 ‘슬립 메디슨(Sleep Medicine)’ 최신호에 게재됐다.
수면은 비(非)렘수면과 렘수면 단계가 번갈아 4~6차례 반복되며 이뤄진다. 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깊은 잠에 빠지기까지 비렘수면 단계에서는 눈동자가 거의 움직이지 않고 뇌의 활동도 느려진다. 하지만 꿈을 꾸는 렘수면 단계에서는 눈꺼풀 밑에서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고 뇌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전체 수면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렘수면 단계에서는 원래 신체 움직임이 거의 없다. 이때 신체 근육의 힘을 조절하는 뇌간에 문제가 생기면, 꿈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렘수면 행동 장애가 나타나게 된다.
이 교수팀은 2015~2019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면 다원 검사를 받아 렘수면 행동 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 86명과 일반인 74명을 대상으로, 우울증과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감정표현불능증 검사 결과를 비교했다.
수면 다원 검사는 수면 중 뇌파ㆍ안구 운동 등 종합적인 상태를 분석해 수면 장애를 진단한다. 우울증과 감정표현불능증은 각각 자가 설문 형식의 ‘벡 우울 척도 검사(BDI, Beck Depression Inventory)’ ‘토론토 감정 표현 상실 규모 검사(TAS-20, 20-item Toronto Alexithymia Scale)’로 진단했다.
검사 결과, 렘수면 행동 장애 집단 중 경도 우울증 이상으로 진단된 비율이 50%(43명)로 일반 집단 34%(25명)보다 1.47배 높았다.
감정표현불능증 의심으로 진단된 비율이 31%(27명)로 일반 집단 19%(14명)보다 1.63배 높았다. 특히 렘수면 행동 장애 증상이 심할수록 우울증과 감정표현불능증도 심해졌다.
이상암 교수는 “이번 연구로 파킨슨병 환자에게 빈번히 나타나는 우울증과 감정표현불능증이 렘수면 행동 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며 “렘수면 행동장애는 파킨슨병ㆍ치매 등 신경 퇴행성 질환의 초기 증상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효재 진료전담 교수는 “잠자다 자신의 움직임이나 고함 소리에 놀라 깬 적이 있거나 주변 사람에게 잠꼬대와 움직임이 심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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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