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태수 기자, 사진-자비행 보살>
10여 년 전 겨울 북가주 불자연합 송년행사장, 따로 또 같이 무대에 오른 100여 명의 출연자 가운데 그 꼬마는 가장 어렸다. 갓 네 살. 응당 가장 작았다. 사회자가 이름을 묻기 위해 바닥에 한 손을 짚고 한 무릎을 꿇었는데도, 꼬마는 고개를 젖혀 올려봐야 했다.
10여 년 뒤 가을 길로이 대승사 임시법당, 일요 정기법회에 이어 열린 행사에 키가 훌쩍 큰 청소년이 섰다. 거기 모인 어느 어른보다도 컸다. 낮은 법당 천장에 매달린 연등들이 그의 머리에 닿을 것만 같았다. 동년배 어른치고 작은 키가 아닌 북가주 불자산우회 신규영(법명 무문) 회장은 뭘 전해주고 덕담을 건네면서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 했다.
이준(영어이름 마이클 이). 송년행사에서 아장아장 귀염귀염 막춤으로 큰 웃음을 선사했던 준이가 어엿한 고교생이 돼 북가주 불자산우회 선정 2020년 장학생이 됐다.
사찰과 단체를 초월해 북가주 한인불자 50여명이 2006년 7월 로스게이토스(캐슬락 주립공원트레일)에서 첫 연합산행을 가진 것을 계기로 발족된 불자산우회(Northern California Buddhist Hiking Group)는 출범 이태 후부터 10년 넘게 해마다 회원들의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북가주 청소년(초기에는 중고교생, 현재는 고10,11,12학년생) 1,2명에게 장학금품을 증정하고 격려해왔다. 올해는 지난 8월 첫 공고에 이어 서류제출(성적증명서, 자기소개서, 에세이)과 심사를 거쳐 준이를 선정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대승사 법당에서 시상식을 갖고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수여했다.
준이는 다른 커뮤니티 봉사활동은 물론 청소년 불자로서 사찰(대승사)과 단체(카이바 주니어/Korean-American Young Buddhist Association Jr.) 활동도 열심이었던데다-- 준이를 추천한 자비행 보살은 “준이는 진짜 잘났어요. 어릴 때부터 부처님 전에 절도 잘하고 주니어 카이바에서 열렬히 활동했어요, 공부도 잘했고요”라고 극구 칭찬했다--이번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자신이 왜 생명공학분야 진출을 꿈꾸는지 감화력있게 서술해 주목을 끌었다. 에세이 요지는 이렇다.
“...이런 관심(생명공학분야 진출희망)은 내가 첫 태권도 검은띠심사(첫 승단심사)를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하는 커뮤니티 봉사 프로젝트에서 생겼다. 나는 생명을 위한 릴레이(Relay for life)라는 암연구 자선이벤트의 기금모금운동에 참가했다. 그것은 내게 암환우들뿐만 아니라 암환우 간병자들과 후원자들 또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했다. 이런 인식은 내게 생명공학에 대한...”
준이가 장학생으로 뽑히자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그 부모에 그 자녀’라는 칭찬이 덤으로 따른다. 부모는 북가주 한인불교계의 크고작은 행사에서 묵묵히 꾸준히 자원봉사를 해온 의천 거사-백련화 보살이다. 게다가 의료계에 몸담고 있다. 준이의 두 누나도 빼놓을 수 없다. 네 살배기 준이가 무대에 올랐던 그 시절, 고운 한복 차림으로 우리춤 우리가락을 선사해 갈채를 받았던 중고교생 자매(수련-영민)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사찰행사나 불자연합행사에 자주 참가해 늘 웃는 낯으로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두 누나 모두 공교롭게도 의료계(수련) 예정자에 생명공학계(영민) 지망생이다. 이제는 준이까지...
준이가 키만 훌쩍 큰 건 아닌 것 같다. 산우회 장학생 선정을 축하하면서 미국에서 자란 청소년에게 너무 과한 질문 아닌가 하는 마음을 지우지 못한 채 불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사뭇 찰지다.
나를 개선하면서 남들을 돕는 데 보다 초점을 둔 공정하고 진솔한 종교라는, 거의 자리이타(自利利他) 내지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의 참뜻을 꿰뚫은 듯한 답이었다(I see buddhism as a fair and honest religion that focuses more on improving oneself and supporting others along the way). 이는 또 그의 생명공학분야 진출의지에 믿음직함을 더해주는 맞춤형 불교관으로 들렸다.
‘그 부모에 그 자녀들’이란 칭찬을 살짝 비틀어 ‘그 자녀 준이’의 마음자리에 ‘그 부모’는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역시나 속살이 야물게 든 대답이 나왔다.
“엄마 아빠, 지금의 제가 있게끔 밀어주시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두 분께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보는 것이야말로 제가 공부를 계속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한 최대의 동기부여가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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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