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살 앞두고 가진 가족파티 감춘 비밀·상처 드러나는데…

2020-09-18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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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영화 블랙버드(Blackbird) ★★★ ½ (5개 만점)

▶ 연극 느낌 미국판 ‘사일런트 하트’ 참신한 대사에 촬영·연출 훌륭, 수전 서랜든의 연기도 인상적

자살 앞두고 가진 가족파티 감춘 비밀·상처 드러나는데…

릴리(앞줄 오른쪽)를 둘러싸고 온 가족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찍는 사람은 릴리의 남편 폴.

죽음에 관한 영화이면서도 사랑과 온기 그리고 희망마저 느껴지는 가족 드라마로 연기파 앙상블 캐스트의 다양한 연기들이 돋보이는데 특히 작품의 주인공인 눈이 큰 수전 서랜든의 조용하면서도 안으로 깊은 호심 같은 연기가 인상적이다.

덴마크영화 ‘사일런트 하트’(Silent Heart·2014)의 미국 판으로 유럽풍과 연극같은 느낌이 나는데 진행이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얘기를 서술해가면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내용이 자칫했다간 신파극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참신한 대사가 있는 각본과 많은 배우들의 부드러운 연기 그리고 로저 미첼 감독의 신선하고 유연한 연출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크리스마스 주말. 미 북동부 해변의 저택에서 가족 파티가 열린다. 의사인 폴(샘 닐)과 그의 아내 릴리(서랜든)가 마련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부부의 장녀 제니퍼(케이트 윈슬렛이 안경을 쓰고 머리를 뒤로 매 알아볼 수가 없다)와 그의 다소 저속한 남편 마이클(레인 윌슨이 유일하게 역에 안 맞는다)과 이들의 틴에이저 아들 조나산(앤선 분). 그리고 둘째 딸 안나(미아 와시코스카)와 그의 파트너 크리스(벡스 테일러-클라우스) 및 릴리의 절친한 친구로 한 식구와도 같은 리즈(린지 던칸).


가족 모임은 릴리가 불치의 근육 위축증을 앓아 병세가 더 악화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살하기 전 자신의 지나온 삶을 축하하고 또 가족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가족이 모이면서 이들 간에 감춰지고 쌓였던 비밀과 상처와 근심 걱정과 염려 그리고 한이 밖으로 들어난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들이 할 말을 하는데 모임의 클라이맥스는 릴리가 자살하기 전날 저녁에 갖는 만찬. 선물들이 나눠지고 왁자지껄 한 가운데 죽음을 언급한 유머마저 있는데 슬픔이 내려앉은 가운데에서도 가족 간의 사랑이 고즈넉하게 분위기를 감싼다.

튼튼한 드라마로 촬영도 좋은데 보기 좋은 것은 배우들의 각기 특징 있는 연기. 서랜든의 완벽한 연기 외에도 닐과 분의 연기가 돋보인다.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게 가슴 아프다. R등급.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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