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여래사에 거의 매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마이크라는 이름을 가진 훤출한 키에 어린 아이 같은 큰 눈을 가진 45살 먹은 사람이다. 그가 절을 방문하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데 새벽부터 자정 늦은 시간까지 들쭉날쭉하다.
그의 손에는 항상 비닐봉지가 들려있는데 항상 무언가가 묵직하게 들려있다. 딩동하는 초인종소리에 나가보면 마이크가 멋적은 웃음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곤 어떤 때는 먹을 것을, 어떤 날엔 양말이나 신발 등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한다. 그 때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내어주곤 했는데. 어느 날 부턴 자신이 다른 데서 얻은 것을 나에게 나눠주곤 한다. 어떤 때는 현금 5불을 주기도 하고 커피 같은 것을 건네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필요 없다고 사양하다가 너무 거절하면 무시한다고 생각할까봐 한두 번 받았더니 그 뒤론 뭔가 쓸 만한 게 생기면 나에게 가져다주며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 가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 같은 남자스님을 비구(比丘)라 한다. 이는 팔리어 비쿠(bhikkhu)의 음역으로, 그 뜻은 음식을 빌어먹는 걸사(乞士)이다. 즉 걸인처럼 밥을 빌어먹는 사람인데 선비처럼 학식이 있다는 말이다. 부처님 당시에 스님들은 하안거(여름 석달, 雨期)를 제외하고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탁발하며 수행했는데 이때도 사흘이상 한 장소에서 머물지 못하도록 했는데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곳에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그러다 결국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마이크는 예사 노숙자와는 다른 면이 많다. 그는 자기에게 꼭 필요한 거 외엔 소유하지 않고 자기가 얻은 것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을 즐겨한다. 내 기준에서 볼 땐 바람직한 수행자에 가깝다. 우리 주변엔 대다수의 사람들이 1년에 한 번도 쓰지 않을 물건을 언젠가 필요할 거라며 창고에, 차고에 잔뜩 쌓아두고 살고 또 자산이 많아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많아도 자식들에게 손주들까지 물려줄 욕심으로 남에게 베풀지 못하고 인색하게 산다.
성경말씀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부자가 돈을 많이 벌려면 남에게 못할 일도 하게 되고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도 인색하게 굴었을테니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일 것이다.
불교 수행법에 죽음에 대한 명상(念死)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죽을 날은 구체적으로 모른다. 보통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80세 정도이니 ‘나도 별일 없으면 그 정도는 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사는데 인생사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나이가 젊어도 병으로, 사고로 많이 죽곤 하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니 ‘나에게 몇십년이 남아있겠지’ 생각하고 부지런히 저축하고 노후를 계획하며 오늘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내일 또는 내년을 기약하며 오늘을 희생하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에게 부처님께서 죽음에 대한 명상을 제시하셨다. 만약 나에게 일주일내지 한 달밖에 삶이 남아있지 않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명상해보라는 것이다. 남은 생이 한 달인 사람이 돈 벌러 직장 나갈 이유도 10년 만기 적금을 넣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달이라면 나는 먼저 내 소유의 물건을 정리하고. 관계가 소원했던 사람에게 찾아가 미안함을 표시하고 고마웠던 이들에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방문하고 조용히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다음 생을 기약할 것이다.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이 먼저 올지 모르는 코로나시대에 마이크는 나에게 또 다른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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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 스님 (SF여래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