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컴이 고장났다. 바이러스에 걸렸기 때문이다. 감염된 지구컴이 어떤 이상 증세를 보일 지, 중차 대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래선지 날씨도 들쭉날쭉 이상하고, 사회도 혼란하고, 지구 내부가 새고 있다 는 둥, 여러 이상 증후들이 나타나 고 있다. 최악은 셧다운이 될 수도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코비드-19 이후의 세상에 대해, 예상하고 추측한 것을 주의 깊게 보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예측은 앞으로는 기존 했던 인간관계의 질서가 깨지고, 남녀노소 고저를 떠나, 실력만이 살 아남을 것이라는 거다. 그 실력이 대부분 인터넷 세상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 선생님이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면 진짜 누가 잘 가르치는 스승인지 바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잘 다루고 인터넷에 최적화된 스승이 많이도 아니고 몇명만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만 이 선생님의 실력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상상해 보자. 모두가 집 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될 경우, 많은 일상의 소중함이 사라질 것 이다. 예쁜 옷이며 몸매가 무슨 소용인가. 현실의 나는 잠옷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10여년 전 ' Surrogate' 란 영화가 있었다. 모든 활동을 나 대신 로봇이 하게 하고. 자신은 로봇과 연결 된 시스템을 통해 가상의 삶속에서 산다. 그 세상에서는 마트에 진열된 여러 몸 중에서 맘에 드는 걸 바로 사서 바꿀 수도 있다. 인종도 성별도 생김새도 자유자재다. 그 로봇 세상에선 젊고 아름다운 여자지만, 현실의 주인공은 늙고 추한 모습으로 시스템에 연결된 채 초라하게 누워있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로봇인 자신이 월등하기에 인간은 현실의 자신보다 로봇에 올인 한다. 주객이 전도다. 10년전 영화인데 아직도 그 영화를 보고 느꼈던 소름 끼침이 생생하다. 우려였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세상에선 우리에게 인터넷 세상 속에 자꾸 들어가라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한다. 때마다 개인 정보를 남기는 셀폰과 카드를 쓰라 하고, 게놈을 파악할 수 있는 체액을 거둬가고, 집에만 있으라고 명령한다. 가령, 이 상황이 누군가 힘을 가진자가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 관리가 쉬운 컴퓨터 속에 우리 정보를 넣고, 획책을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모두가 컴퓨터 앞에 앉아 시키는 대로 집안에서만 살며, 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야 할까? 그래도 누구네 집 정원에선 예쁜 장미가 피고, 쇼핑몰 분수는 솟아오르고, 사랑하는 연인이 보고 싶어 빗속을 달려갈까? 어느 날 바깥 세상에 나왔을 때 모든 시스템이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게 바뀌어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싫다. 이 중은 컴퓨터 세상에서 살고 싶지도 않고, 모기에 물려도 저녁 바람을 느끼고, 꽃 향기를 맡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에게 나 좀 불편해도 서로 부대끼며 현실 세상에서 많이 내려놓고, 조금 만 덜 누리고 살자고 통 사정하고 싶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편해지고 싶은 걸까? 이 이상 더 편해질 수도 없는데. 그 편함을 추구하는 욕심때문에 이렇게 지구컴 이 버그에 먹혀서 멈춰버렸는데. 부처님 말씀에 '욕망에서 두려움이 생기고 욕망에서 슬픔이 생긴다'고 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5G 속도로 달리는 한, 우리는 세상과 주변을 정확히 볼 수 없다. 제발 멈춰 서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번쯤 살펴보자. 울게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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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