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대로가 좋노라…‘지금’을 선택한 지혜, 역사가 되다

2020-05-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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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시티(Orange City), 시간의 숨결 고스란히 간직, 어릴적 본 영화 속 거리처럼

▶ 모든 건축물이‘앤틱’인 도시, 흥겨운 힐링을 선사하는 곳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도 도시도 마찬가지다. 건물과 거리는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벽돌과 나무 그리고 아스팔트로 이뤄졌지만 세월이 쌓이면서 숨결이 담기고 정이 묻어난다. 시간을 담은 오랜 도시는 그래서 발길을 끌어당긴다. 현실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잊혀진 진실을 올드타운은 속삭여 준다.

오렌지(Orange)시티를 방문할 때마다 흥겨운 정감에 젖는다. 그것은 마치 어릴 적 봤던 영화 속의 거리를 걷는 즐거움 같다.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산책을 하며 상점 쇼윈도를 둘러보고 다니면서, 연륜이 푹 녹아든 거리가 주는 기쁨에 잠기게 된다. 인구가 빽빽하게 몰려 사는 ‘언제나 젊은 땅’ 서던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시티의 존재는 시간과 성숙의 교훈을 상기시키는 샘물이다.

오렌지시티의 중심은 말할 것도 없이 올드타운의 플라자 스퀘어(PlazaSquare)다. 이곳의 건물과 집들은 대부분 1920년대 이전에 지어졌다. 남가주지역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1960년대이후에 대대적인 신축공사를 통해 얼굴을 바꿨지만 오렌지시티는 점잖게 거부했다.‘지금 이대로가 좋노라.’ 자족을 선택한 지혜는 이제 역사가 됐고 순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플라자 스퀘어는 원형광장이다. 중심에는 아름다운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작동되는 분수대 가운데 오렌지카운티에서 가장 오래 됐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최고 역사를가진 은행도 바로 이 거리에서 여태껏 고객을 맞고 있다.

광장을 둘러싼 주변에는 1888년부터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수백 채의 건축물이 골목마다 늘어서 있다. 은행, 상점,식당, 골동품 가게, 디자이너 옷을 파는 부틱, 시청 등과 일반 주택이 모두소중한 ‘앤틱’ (antique) 건축물 안에들어서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역사보존 건물이 두 번째로 많은 도시가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광장을 동서로 잇는 채프만 애비뉴(Chapman Ave.)에 위치한 ‘왓슨(Watson) 드럭스 앤 소다 파운틴’은 콜라와 캔디,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다. 예전에 동네에서 약국 노릇을 하던 가게는 옥호 자체가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데 1899년부터 영업 중이다.

놀랍게도 지금도 주민들은 이곳에서 약을 산다. 왓슨 파운틴에서 바나나 스플릿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으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 봐라. 머리가 텅 비고, 시간은 어느새 가본 적도 없는 시대로 돌아간다. 영화 ‘백투더퓨처’ (Back to the Future)가 따로 없다.

채프만 대학교 쪽으로 남북으로이어진 글라셀 스트릿(Glassell St.)을따라가다 보면 ‘필링 스테이션 카페’(Filling Station Cafe)가 나온다. 이름만큼이나 배를 채우기 충분하게 두둑한 샌드위치를 팔고 있다. 인근의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 젊음의 열기가 뻗치는 곳이다.

패디오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깊어가는 겨울날의 휴식을 즐겨 보자.

이보다 호젓한 분위기를 찾고 싶으면 같은 거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브룩시 고메이 와플 샌드위치’ (BruxieGourmet Waffle Sandwich)도 좋은 선택이다.
이런 풍미 덕분에 많은 영화들이이곳 거리에서 필름에 담겨졌다. 톰행크스가 주연한

‘댓씽유두’ (ThatThing You Do)를 비롯해 ‘빅 마마스하우스’ ‘블랙 십’ 등도 바로 오렌지시티 올드타운에서 촬영됐다.


우먼스클럽 하우스는 1924년 지어졌는데 지금도 180명의 회원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매년 4월 열리는 플라워 쇼는 무려 72년의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매해 노동절이면 플라자 스퀘어에서는 ‘오렌지 인터내셔널 스트릿 페어’가 개최된다. 채프만과 글라셀 거리를 따라 펼쳐지는 축제에서는 전세계의 문화가 소개되고 각 나라의댄스 향연이 펼쳐진다.

또 음악이 넘치는 거리에서는 가지각색의 음식을맛볼 수도 있다. 페어에서 거둬들이는 수익금은 모두 커뮤니티의 비영리단체를 돕는 기금으로 사용된다.

오렌지시티는 이름이 말해 주듯 오렌지 농사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오렌지 농장과 어렵지 않게 마주치곤 했다.
상거래를 마친 자금이 오렌지시티 다운타운의 은행으로 몰리고, 상자에 넣은 오렌지는 이곳에서 전국 각지로운송됐다. 오렌지시티가 간직하고 있는 고요한 안정감은 이같은 농촌의목가적 배경에서 배어 나온다.

그 명맥을 이어‘ 토피카 앤 샌타페 레일웨이’는 오렌지카운티에서 현재 운행되는 유일한 철도로 변함없이 과일을실어 나른다.

오렌지시티 올드타운은 채프만 대학교와 끊을 수 없는 관계다. 대학 캠퍼스가 광장에서 바로 두 블럭밖에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여느 대학촌처럼 시끄럽고 무례하지않다.

채프만 대학교는 그리스도 교단이 1861년 세운 대학으로 개교 당시부터 여학생은 물론 인종에 관계없이 학생을 받아들였다. US 뉴스앤월드 리포트 잡지가 매해 선정하는 대학 순위에서 서부 지역 탑 랭킹에 오를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요즘 대학교 교정은 봄 꽃으로 가득하다. 맑은 영혼과 순수한 열정이 흐르는 캠퍼스를 걸으며 가족과 나누는 대화는 시름을 씻어준다. 비로소 따스한 기운이 찾아 온 남가주에서 오렌지시티는 지금 최고의 시즌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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