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미인간이 된듯 거인바위들을 오르고 내려가고 마침내…

2020-03-13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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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Wonderland’ Traverse (하)

개미인간이 된듯 거인바위들을 오르고 내려가고 마침내…

통과가 쉽지 않은 ‘Wonderland’ 구간의 여러 모습.

개미인간이 된듯 거인바위들을 오르고 내려가고 마침내…

통과가 쉽지 않은 ‘Wonderland’ 구간의 여러 모습.


개미인간이 된듯 거인바위들을 오르고 내려가고 마침내…

통과가 쉽지 않은 ‘Wonderland’ 구간의 여러 모습.



평평한 지대가 계속된다. 다소 삭막한 사막땅이지만 그래도, 내 안목으로 식별이 가능한 식물들로는 Juniper, Mojave Yucca, Nolina, Prickly Pear Cactus, Scrub Oak 등이 자라고 있다. Keys Peak으로부터 1.75마일쯤의 Boy Scout Trail을 따라가니, Joshua Tree가 드문드문 서있는 곳 쯤에서 길이 갈라진다(11:25). 직진하면 1.25마일 거리의 Boy Scout Trail의 시작점이자 종점이기도 한 Keys West Parking에 이르게 되고, 왼쪽길로 가면 2.25마일 거리에 있으면서 본격적인 ‘Wonderland’ Traverse가 시작되는 곳이랄 수 있을 ‘Willow Hole’에 이르게 된다.

왼쪽으로 길을 잡아 가다보니, 앞쪽에서 여러 남녀혼성 등산객들이 활기차게 담소를 나누며 다가온다(12:14). 갈림길에서 대충 2마일을 온 지점이다. Willow Hole이 멀지 않은 지점이니, 그 곳까지 갔다가 Keys West Parking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응달진 언덕받이에는 아직 덜 녹은 눈들이 깔려있다. 5분쯤을 나아가니, 등산로 역할을 해온 Wash의 모래사장이 광장처럼 대폭 넓어지면서 주변 사방에 각양각색의 암봉들이 병풍인양 빙 둘러있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는 입구쯤 됨직한 정경이다. 모랫길을 따라 5분여를 더 들어가니, 돌연 볼품없이 다소 어지럽게 휘늘어진 몇 그루의 Willow Tree들이 앞을 막는다(12:25). 그 안쪽 오른편으로 100여평 넓이는 족히 될 얼음웅덩이가 있고 그 주위로 모나지 않게 동글동글 솟구친 암봉들이 둘러있다. 이곳이 건기가 아닐 때는 대개 물이 고인다는 ‘Willow Hole’이겠다. 대원 모두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곳 정경을 둘러보다가, 물 웅덩이를 오른쪽에 두고 Willow Tree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내, 경관이 대단하고 바람도 잦아지며 앉기에도 편안한 개활지가 나온다(12:33). 신기하고 변화무쌍한 주변 암봉들이 여러가지로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한다. 거대한 한 송이 꽃봉오리로 발현한 암봉은 이쪽이고, 화성쯤의 극한 우주환경에 건설될 만한 외계탐사기지의 형상은 저쪽이다. 금강산의 만물상에 비견되는 경개가 아닐런지 막연히 상상해 본다. 이곳에서 각자가 지닌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북쪽으로 이어지는 Route를 따라 나선다(12:55).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듯, 외진 느낌을 주는 구간에 들어선다. 1.5마일의 거리가 된다는 본격적인 ‘Wonderland’ Traverse 구역에 들어서고 있나 보다. 통과하기 수월한 Route가 차츰 사라지며, 보행속도가 크게 느려진다. 커다란 바위덩이들을 조심스레 오르고 내리면서 나아간다. 대체로 차츰 시야가 좁아지다가, 전후좌우 큰 바위들에 시야가 막혀 바로 앞을 잘 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제이슨과 써니는 지도와 GPS를 참고하고 전후상하좌우를 두루 살피며 바지런히 움직인다. 점심후 길을 나선지 20여분만에, 10m 앞이 안보이게 험준한 계곡속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13:15).

어디가 어디인지 알기 어렵고 어느 방향에 통과할 틈이 있을지 도무지 짐작키 어렵다. 마치 길이 없는 곳에서, 시야가 10m가 안되는 짙은 안개속에서 나아갈 틈을 찾는 것과 유사한 사정이다. 그저 몇 미터 앞만 보면서 틈이 있으면 일단 그리로 나간다. 그 뒤는 어떤 형국인지 알지 못하니, 불안하다. 이따금 앞장을 서서 길을 찾는 제이슨이 일행을 기다리게 하고 혼자 앞으로 나가며 우리 일행이 통과 가능할 루트인지를 살핀다. 때로는 우리를 따라오라고 부르고, 때로는 되돌아 나와서 다른 루트를 탐색한다. 이따금 아슬한 바위 끝에 위태롭게 서서 지형을 탐색하는 제이슨을, 또 써니를, 지켜보는 내가 오히려 더 긴장되고 불안하다.

갈수록 계곡이 깊어지고 바위덩이들이 커지는 양상인데, 이와는 반대로 내 몸이 갈수록 작아지는 느낌이다. 아, 그러고 보니 ‘동화의 나라, Wonderland’에 무단으로 잠입한 벌로 마녀 Circe의 저주에 걸린 것이며, 결국 우리들 모두의 몸이 점차 축소되어져 마침내는 이렇게 작은 개미인간이 되어진 것이다. 한참 전에 스쳐 지났던 높은 암봉이 살아있는 Titan인양 아직도 가까운 자리에서 부지런히 좌충우돌하고 있는 우리를 지긋이 굽어보고 있다.

일각 일각, 시간은 간단없이 흐르는데, 우리의 걸음은 마냥 굼뜨다. 어느 구간부터는 거의 완만한 내리막에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집채같은 바위덩이에 가로막혀 번번이 발이 묶인다. 때로는 거대바위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때로는 발이 닿지 않는 저 아래 바위로 서로 손과 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위태롭게 내려서야 한다. 나아갈 곳을 못찾아 결국 일정구간 통과했던 길을 되돌아 나와서 다시 루트를 찾는 수고도 거듭 치루며 더듬더듬 나아가다 보니, 어느 결에 계곡의 평탄한 모래바닥에 내려서게 된다(14:13).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고 발이 빠질 만큼의 맑은 물이 흐른다. 양탄자를 밟는 듯 발걸음이 편하다. 힘들고 위태로운 구간을 다 지났나 보다며 안도의 느긋함을 느낄 무렵, 다시 또 높직한 바위봉 병풍이 앞을 막는다(14:23). ‘점입가경’이란 이런 것이겠다. 1시간쯤의 분투끝에 방금 통과한 바위세상의 험준함을 능가하는 또 다른 난공불락의 성곽이다. 선택의 여지 없이 형극의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Lawrence님의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하더라’는 회고가 거듭 떠올려진다. 주차장의 게이트가 잠기는 시각이 오후 5시라니, 설사 이 지역을 잘 벗어난다 해도, 이래 저래 오늘 중으로는 귀가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1시간쯤의 ‘임전무퇴 전력투구’의 분발과정을 되풀이로 겪다보니, 돌연 한층 더 넓은 바위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Rattlesnake Canyon과의 합류점에 이른 것인데(15:22), 여지껏 1마일이 채 안되는 짧은 구간을 지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그동안도 거대한 바위들이 연출해내는 계곡의 경관에 감탄을 금치 못해 왔는데, Rattlesnake Canyon에 합류되는 이곳의 형세나 경관은 더욱 장대하고 웅장하다. 도대체 어떠한 사연으로 이렇게 거대한 바위들이 이렇게나 많이 이곳에 모여있게 된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앞에서 살펴봤던 지질학적 설명으로 이해를 해보려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줄기를 따라가야 하는데, 저 아래 계곡 바닥에 이르는 여정이 또한 험난하다. 워낙 덩치가 큰 바위들이 얼키고 설켜있어 작아진 내 개미몸으로 이들을 지나 저 밑으로 내려가기가 난감하다. 제이슨과 써니가 발빠른 척후가 되어 거인바위들을 오르내리며 우리들을 안내하고 도움의 손을 건네는 분연한 활약으로 일행 모두가 마침내 이 마법의 거인왕국을 가까스로 벗어난다(15:58).

이제 Rattlesnake Canyon일 비교적 평탄하고 단단한 개울바닥을 밟으며, 또 해방감도 즐기며 경쾌하게 나아간다. 큰 바위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지만 꼬불꼬불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거침없이 진군한다. 주차장이 닫히기 전에 산행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발길이 더욱 바쁘다.

드디어 저멀리 아래로 우리의 차를 세워둔 Rattlesnake Canyon Picnic Area가 눈에 들어온다. 안도감으로 기운이 버쩍 솟는다. 그러나 다시 또 변화무쌍 화려무비한 바위구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16:20). 굴곡이 많은 바위덩이를 다시 오르고 내리며 아래로 내려가기 20여분에 마침내 주차된 우리의 차 ‘Rubicon’에 도착한다(16:40).

한 대의 Jeep에 일행 모두가 다 타는 것은 적잖게 무리가 되는 일이나, 이상하고 굉장한 ‘Wonderland’의 모험을 다 함께 잘 치루어낸 지금, 모두가 한 마음 한 몸이 된 유대감 친밀감으로 스스럼없이 기꺼이 서로를 비집고 차에 오른다.

우리 모험의 첫 출발점이었던 Indian Cove Campground에는 게이트가 닫히기 불과 3분전에 도착한다. GPS기록으로, 8시간 55분에 11.4마일을 걸었고 순등반고도는 2689’인 산행이 됐다. 물론 우리 모두는 당일로 집에 잘 돌아갈 수 있었고, 나는 그 어느 날 보다도 더 편안히 꿈도 없이 푹 잤는데, 어쩌면 누군가 한 사람쯤은, 일곱난장이의 일원이 되어 ‘이상하고 굉장한 동화의 나라’에서 다시한번 이리저리 헤매이는 두렵고도 뿌듯한 긴 꿈을 꾸었는 지도 모른다.

제이슨 써니의 빼어난 리더쉽, 멤버들의 차분한 분발, 황천후토의 각별한 보호에 감사드린다.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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