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학생들로 가득찬 신학교에서 강의와 교회서 설교
▶ 교인들의 에배에 대한 높은 열정 볼때 밝은 미래 보여
자카르타시내 내셔널 마누먼앞에서 박상일 목사와 원룸처치의 스티븐 목사
자카르타 원룸 처치에서 주일 예배 설교후 교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인도네시아. 들어만 보았을 뿐 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그러나 이번에도 막상 도착하기 전까지도 큰 생각도 준비도 없이 다녀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한 주일(1월 27일-2월 4일)을 다녀온 후 다음 여행의 준비 겸 그 나라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본다. 서울에서 모처럼 설날 명절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 찬 겨울 공기를 쐬며 인천 공항을 떠났는데, 쿠알라룸푸르와 자카르타를 거쳐 다음날 아침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북부 스마랑 공항에 내리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마중 나온 앱디엘 신학교 (STT Abdiel Theological Seminary)학장인 맹거스 목사와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친구인양 자동차 안에서 대화를 하며 학교로 행하는 중 창문 밖 멀리 기온이 섭씨 44도라는 표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 변에 즐비한 야자수와 높은 건물들만 보면 플로리다 어디를 온 기분 같지만, 차도에 가득한 오토바이 행렬이 여기가 동남아 국가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서부터 마스크를 단단히 챙겨 쓰고 왔지만, 마스크는 바이러스가 아닌 매연을 위해 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따라 동서 5천km에 걸쳐 1만 7000천이 넘는 섬들이 길게 널려있는 세계 최대의 섬나라이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있는 인도네시아는 활화산만 현재 127개가 된다고 한다. 또 석유를 포함한 다양한 광물, 천연자원, 목재 등을 보유하고 있는 자원대국이며 인구 2억 7천여 명으로 대국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간혹 있지만, 대부분이 국어인 바하사 외에 700여개의 부족언어가 있다고 하니, 과연 다문화 다인종 국가이다. 인구의 90퍼센트가 무슬림이지만 이슬람 국가가 아니며 종교의 자유가 있어 기독교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맹거스 학장에 의하면 그 이유로 네덜란드에서 1945년 독립한 인도네시아가 헌법에 다섯 개의 국가 원리, 즉 전능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정의롭고 문명화된 인간사회,’ ‘하나 된 인도네시아,’ ’합의 혹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 ‘모든 인도네시아 인을 위한 사회 정의실현’이라는 국가 철학에 기독교의 정신이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항에서 한 시간 남짓 신학교까지 가는 길목 여기저기에 제법 웅장한 교회 건물들이 창밖으로 보였다. 말이 인구의 10퍼센트이지 절대 숫자로 치면 이 나라의 기독교 인구가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는 기독교 대국(?)인 셈이다.
신학교에 도착을 하여 3일간에 걸친 “예언자적 설교”에 관한 특강을 하게 되었다. 미국 신학교에서 늘 나이가 들고, 몇 명되지 않은 학생들 수업에 익숙해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위에 집중조차 할 수 없는 강당에 젊은 신학생들이 가득 모여든 것이다. 신학생들은 물론 지역의 목회자들 및 이웃 신학교 교수 학생들까지 모여 행사가 성황을 이루었다. 놀라운 것은 고풍스런 신학교 교정 한가운데에 있는 한인교회 건물이었다. 신학교 넓은 부지 위에 이곳의 한인들이 아름다운 교회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매 학기 현지 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후원하고 또 정기적으로 기숙사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교수진 중 한국 선교사도 있다. 한국의 모 신학 대학교와 자매결연 하여 현지 목회자들의 한국교회 방문 등 활발한 교류가 있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학장과 교수진 일부가 나를 지역 관광지를 안내 해 주었다. 동행한 한국인 교수는 미국에서도 사신 경험이 있으시지만 인도네시아의 풍요한 자연 환경 및 장래의 발전 가능성이 매력이어서 떠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스마랑신학교 캠퍼스내에 있는 스마랑한인교회. 학생들이 행사안내를 하고 있다.
앱다니엘신학교(학장 맹거스 목사)에서 강의후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
3일 간의 특강을 마치고 그 사이 이미 가족같이 정든 신학교 식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며 자카르타로 향했다. 버클리에서 학교를 다니며 잠시 우리 교회의 식구가 된 예후다 가족을 만나 시내관광을 하였다. 높은 빌딩과 수 없이 가득한 차량들 및 인파들 외에 특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꼽자면 첫째로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가 왼쪽 차선을 달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부분 여성들이 히잡을 하고 다닌다는 것. 수하르토 대통령시절 히잡이 중동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히잡이 아예 착용이 금지되었는데, 최근에는 의무가 아님에도 절대다수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을 선호하는데 이는 패션을 위한 것과 동시에 히잡이 종교적 경건성을 덧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카르타 서편에 위치한 예후다의 교회는 작은 오순절 교회로 원룸교회다. 27년 전 원래 성경공부로 시작된 가정 모임이 교회가 되었는데도 그 자리에서 아직 예배를 드린다. 부지를 마련하고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지역주민들이 동의를 얻지 못해 건축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가 있으나 무슬림 이웃들의 암묵적인 방해를 이겨내야 하는 인도네시아 교회의 어려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무슬림 이웃 속에 당당히 서 있는 주님의 교회다. 토요일 저녁 청소년들을 위해서 수14장 6-12를 근거로 “용기 있는 신앙”을, 주일아침에는 요1:29-46을 통해 “와 보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열정이다. 주일 아침 7시 대예배를 드리기 위해 50여 개의 접이 의자를 꽉 채운 성도들은 모두가 알짜 교인들로 보였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다시 그 자리를 채운 어린이들, 또 그 전날 토요일에 교회를 채운 청소년들의 뜨거운 찬양, 또 이 교회가 매일 갖는 주중 아침 기도회, 수요일 저녁기도회, 목요일 여성예배, 금요일 저녁 어린이 및 어른 예배, 주일저녁예배 등 일 주일 내내 꽉 짜인 교회 예배 스케줄을 보면서 나는 인도네시아 교회의 에너지와 밝은 장래를 보게 되었다.
버클리의 단칸방 월세로 독채 아파트를 일 년간 빌릴 수 있고, 단돈 60센트로 길거리에서 소박한 아침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생활비와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과 활력으로 가득한 가능성의 나라 인도네시아. 그러나 내 마음을 끌게 한 진짜 이유는 문화를 초월해 나를 따뜻하게 맞아 준 그 곳 성도들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고 셀카를 찍으려는 친근한 그들이 감사하고 그리워진다. 또 하나의 감동이 있다. 신학교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또 교회 예배를 마치고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아이들이 하나 같이 와서 자신들의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려 했다. 어디서 배웠냐고 하니, 유투브와 한국 드라마라고 한다. 또 신학교 부근 호텔방 텔레비전에서 영어채널은 없는데 한국드라마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내가 기독교인이며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다음 번 인도네시아 방문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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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