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산길 곳곳 낭떠러지…어둠 내리면 더 조심, 또 조심

2020-02-21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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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Rabbit Peak (6,440’) (하)

하산길 곳곳 낭떠러지…어둠 내리면 더 조심, 또 조심

거칠고 위태로운 하산길의 어느 구간.

하산길 곳곳 낭떠러지…어둠 내리면 더 조심, 또 조심

거칠고 위태로운 하산길의 어느 구간.


하산길 곳곳 낭떠러지…어둠 내리면 더 조심, 또 조심

Ridge Crest에 올라서 내려다 본 Clark Dry Lake 일부의 풍경.



일단 산줄기의 꼬리위에 올라서게 되면 걷기에 다소 편해진다. 자잔한 돌과 흙이 혼재된 구간에는 발자취로 식별되는 길이 보이나, 큰 바윗돌들이 많은 구간에는 발자취가 안보여 애매한 상황이 반복되기도 하는데, 능선의 왼쪽에 바짝 붙는다는 느낌으로 가면 대체로 무난하다. 중간에 아슬아슬한 칼날능선이 여러번 나오고, 대체로 이런 곳에서는 얼기설기 포개어지고 흩어진 크고 작은 바위들을 밟고 지나야 하므로, 조심스레 차분히 발을 딛어야 한다.

주로 왼쪽(서쪽)능선 바깥쪽은 깊고도 험악하게 함몰된 거친 지형이다. 광대한 Clark Dry Lake를 눈 아래로 둔 채 아스라한 단애를 형성하고 있는데, 기록을 보면 이 곳이나 또는 바로 이 산줄기의 동쪽에 있는 Salton Sea는 아주 먼 옛날에 지각의 변동으로 지반이 내려 앉아 조성된 지형이라고 한다.


우리가 밟아나가는 등산로는 주로 산줄기의 고점을 따라 이어진다. 1차로 우선 Villager Peak(5756’)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략 7~8개 또는 그 이상의 산 봉우리를 넘어가야 하는 힘든 코스인데, 그 때마다 눈앞에 드러나는 봉우리가 등산시작점으로부터 7마일 거리가 되는 Villager Peak일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막상 올라보면 다시 다른 봉우리가 또 나타나는 일이 거듭되어 낭패감을 주기도 한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왼쪽은 그 광활하게 탁트인 전망을 거의 전 구간에 걸쳐 볼 수 있음에 비해, 오른쪽은 Rattlesnake Canyon을 사이에 두고 높이 솟아있는 Mile High Peak(5340’)과 Rosa Point(5083’)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에 가려져, 상당한 고도에 오르기 전에는 이렇다할 전망이 없다. 그러나 일단, 5000’ 정도의 고도에 올라서면, 동남쪽으로 가주 최대의 호수이자 인공염수호수인 Salton Sea가 바다를 연상시키는 길고도 망망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비로소, 좌로는 광대한 Clark Dry Lake, 우로는 푸르른 Salton Sea를 포함하는 호호탕탕 드넓은 대자연을 한 눈에 보는 감동이 솟아 오른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사막지대의 산악이라서, 대부분의 경로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은 주로 Barrel Cactus나 Teddy Bear Cholla Cactus이고, 좀더 올라서면, 자기의 키보다 몇 배나 높게 꽃대를 올려세우고 풍성한 꽃을 가득 피운 후, 장렬하게 삶을 마감해가는 숱한 Agave들의 의연한 자태를 보게 된다.

드디어 Villager Peak(5756’)에 도달한다. 7마일에 5000’를 올라서 드디어 거대한 용의 어깨에 올라선 것이다. 보통은 5시간 내외가 걸린다. 등산로의 상태가 너무도 거칠고 험하여 아마도 여기까지의 산행이 Mt. Baldy 옆에 있는 Iron Mountain( 8007’)산행의 어려움을 훨씬 능가하지 않겠는가 싶다.

이곳 정상의 서쪽 벼랑쪽의 돌무더기안에 정상등록부가 있다. 대부분의 등산인들은 여기에서 환상적인 경관을 즐기며 점심도 먹고, 한 참을 쉬었다가, 그만 하산을 한다.
혹시 일행중에 다소 힘들어 하는 대원이나 컨디션이 저조한 대원이 있으면 과감히 전체 그룹의 산행을 중단해야 한다. 한 대원의 컨디션 난조는 팀 전체의 산행을 지체시키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이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고립무원의 사막에서 예상외로 산행시간이 길어지는데서 오는 식수부족 등으로 전 대원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을 계속할 경우에는 하산시에 마실 여분의 물을 이곳 어디쯤에 보관해 두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최종목표인 Rabbit Peak은 여기서 3.6마일의 거리가 되는데, 북쪽으로 산 전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잘 보인다. 그 왼쪽으로 멀리 약간 까만색으로 보이는 산은 Toro Peak (8316’)인데, 이 Santa Rosa 산맥의 최고봉이며, 여기서 부터 등산거리로는 24마일쯤이 된다고 한다.

이곳 Villager Peak의 정상에서는 Rabbit Peak까지의 산행이 매우 단순하게 느껴진다. 그저 능선의 고점을 따라 꾸준히 걸어가면 될 것 같다. 이 두 봉우리의 고도차도 900’에 불과하다. 3.6마일의 거리에 900’의 등반고도는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서두르지 않아도 2시간이면 족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두 봉우리의 사이에 7개쯤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즉 이것은 당연히 올라야 하는 두 산의 고도차이인 900’에 그만큼의 등반고도가 추가 된다는 뜻이 되고 또 하산시에도 또 그만큼의 고도를 올라야 한다는 뜻이 된다. Villager Peak에서 Rabbit Peak까지의 이 구간에서만, 등산시에 2000’, 하산시에 1100’의 고도를 더 올라야 하니 결국 왕복 3100’의 고도를 올라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한 여러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길이 나있지 않은 가운데 큰 돌과 바위투성이의 구간을 많이 걸어야 하는 것이니 당연히 시간도 지체되는데, 등산로가 매우 거칠어 하산과정이라도 시간이 별로 단축되지 않는다.

Rabbit Peak이 차츰 가까워지면서 정상의 왼쪽 아래편으로 토끼머리를 닮아 보이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는 바로 용의 먹이로 삼켜질 토끼의 형세가 아닌가 상상해본다. 그러나 사실은 이 산에 하얗고 붉은 점이 있는 토끼가 살고 있어 그들이 나타날 때는 굉음과 함께 산이 흔들린다는 Cahuilla Indian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구간은 경사가 특히 급하다. 길이가 10마일이나 되는 커다란 용의 머리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을 이곳 Rabbit Peak의 정상까지는 Villager Peak에서부터 대략 3시간 내외가 걸린다. 정상은 대체로 평평한 지형이고, Pinyon Pine과 Scrub Oak이 밀집되어있는 가운데, 몇 군데에 큰 바위들이 놓여있는 풍경으로, 어디가 정상포인트인지 알기어려울 정도이다. 축구장 2개정도는 족히 될 크기의 공원같은 분위기를 풍겨주는 고원(plateau)인 셈이다. 평지라서 전망은 거의 안 보인다. 정상의 가장자리 위치로 걸어가면 Salton Sea도 Clark Dry Lake도 볼 수 있다.

서북편에 있는 큰 바위위에 또 하나의 둥근 바위가 올라앉아 있는 집채같은 바위덩이 위에 Summit Register가 있다. 힘들게 올라온 기쁨의 감회가 식어지기 전에 몇마디 뜨거운 소감을 남겨보자. 뒤늦은 점심을 먹으며 기운을 충전한다.

이곳까지 올라오는데 대략 8시간이 걸렸다면, 하산하는데는 Villager Peak까지는 3시간, 주차장까지는 총 7시간 30분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갈길은 멀기만 한데, 해는 그리 길지 않으니 짧은 휴식으로 그만 만족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하산시에 몇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을 부기한다. Villager Peak을 지나서 해발고도 4400’ 지점을 지날때는 대개는 깜깜한 밤이 되므로 가끔은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줄기를 따라 Rattlesnake Canyon으로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어느 싯점에는 계곡안의 절벽에 이르게 되어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반드시 맨 오른쪽(서쪽)으로 흘러내려가는 줄기를 따라가야 하는데, 길 바로 옆에 아스라히 깊고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는 곳이 서너군데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 하나는, 온 산 여기저기에 무릎이나 허리높이로 자라나 있는 Teddy Bear Cholla Cactus가 발이나 다리 등 몸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개는 접촉하는 순간 밤송이를 닮은 둥근 도막이 스프링에 튕겨나오는 것 처럼 몸에 착 달라붙게 되어 그 가시에 찔리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를 ‘Jumping Cholla’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즉시 동작을 멈추고 Cholla도막을 동료의 도움으로, 손을 대지않고 조심스레 떼어내야 한다. 다행인 점은 그 당시의 고통 이외의 특별한 독성은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산을 다 내려와 사막구간에 다다르게 되었을때가 이미 어두워진 시각이라면 주차지점이 어디인가의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의 발자취가 완연한 통행로를 따라가면 되겠지만, 혹시 이를 놓쳤을 경우에는 저 멀리 S22를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잇 불빛을 살펴서 그 빛이 나로부터 가장 가깝게 보였던 지점이 주차한 곳이므로, 그 쪽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한다. 혹시 중간에 비포장도로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를 괘념치 말고 그냥 동일한 방향을 계속 고수하여 가다보면 곧 포장도로인 S22를 만난다. 주차장의 마일마커가 31.9임을 기억하면 주차된 차의 방향과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참고>

1. Thimble Trailhead에서 출발하되, Palo Verde Canyon의 동쪽줄기를 타고 가다가 다시 Smoke Tree Canyon쪽으로 가서 Pyramid Peak과 Rosa Point(5083’)에 오르고, 다시 Mile High Peak(5340’)을 거친 후에, Palo Verde Saddle을 경유하여, Villager Peak과 Rabbit Peak을 오르고, 다시 Villager Peak으로 돌아와서, 동쪽의 Mile High Peak쪽 아닌 서쪽줄기를 따라 Thimble Trailhead로 바로 내려오는 Loop형 산행을 해봤었다. 전장 26.5마일, 순등반고도 11300’ 내외에 약 20시간이 걸렸는데, 지도와 GPS, 6~8리터의 물을 지녀야 한다.

2. 서쪽의 Clark Dry Lake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먼저 Rabbit Peak에 오르고 난 뒤에 다시 남쪽 능선을 타고 Villager Peak을 경유하여 서쪽줄기를 따라 Thimble Trailhead로 내려오는 코스로도 산행을 할 수 있다. 거리 18.5마일, 순등반고도 7900’에, 총 15시간이 소요됐었다.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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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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