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을 게임처럼

2020-02-19 (수)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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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이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기다릴 때마다 보는 광경이다. ‘어쩌면 이 자투리 시간에도 저렇게 열중할까?’ 한편으론 잠시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그들의 열성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으레 “밥상에 앉아서 아빠가 게임을 하니까 애들도 따라 하지! 조그만 화면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에 얼마나 나쁜데!”하고 핀잔을 준다.

‘무익하게 시간만 허비하게 하는 것이 게임‘이라는 나의 이러한 인식을 최근에 게임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되돌아보게 되었다.

눈이 유난히도 예민한 나는 컴퓨터나 휴대폰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유일하게 게임을 즐겨 본 기억은 빨간 화투를 들고 한 고스톱이다.


대학교 때 ‘테트리스’라는 컴퓨터 게임이 하도 유행이어서 잠시 해보았다. 선명한 색색의 블록이 떨어지면 모양을 맞춰 쌓고, 한 줄을 꽉 채우면 그 줄은 사라지는데 줄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아무렇게나 쌓이는 블록의 속도가 빨라 블록이 맨 위까지 쌓이면 게임이 끝난다. 어떤 이들은 이 게임을 몇 시간이고 했다. 소련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테트리스에 중독되어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을 노리고 만든 전략적 무기로, 소련이 만든 무기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주사위, 너클본즈, 공 등 최초의 게임은 에게 해 근방 지금의 터키 지역에 위치했던 리디아 왕국에서 시작했다. 리디아는 인류 최초로 금과 은 동전을 만들어 교역에 활용할 정도로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200년 경 전설적 왕 아티스 때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자, 하루는 식사를 하고 그 다음 날은 게임에 몰입해 사람들이 배고픔을 잊을 수 있도록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존의 수단으로 탄생한 게임은 리디아 사람들을 무려 18년의 기근을 견디게 했다. 하지만, 가뭄이 계속되자 아티스 왕은 마지막 수단으로 온 백성을 반으로 나누어 마지막 게임을 제안했다. 제비를 뽑아 반은 리디아에 남아서 부족하나마 남아 있는 식량으로 생존하고 나머지 반은 리디아를 떠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생존하자는 것. 결국 자신이 이끈 백성의 반은 리디아에 남고 자기 아들, 티레니아 (Tyrrhenia)가 나머지 반을 이끌고 리디아를 떠났다. 그들이 현재의 이탈리아반도 서쪽 중부 지역, 로마와 피렌체를 포함한 비옥한 땅에 정착하게 되어, 로마 문명을 이루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지중해 해역은 티레니아 해라 불린다.

21세기 들어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지구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새로운 행성을 개척해야 한다며 행성 탐험에 나서는 것과 같지 않은가. 당시 망망대해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 채 물결치는 바다로 나아간 그들은 어떻게 버티고 살아남아 새로운 땅을 찾아 개척할 수 있었을까.

게임을 디자인하는 전문가 제인 맥고니얼에 따르면 게임을 하며 18년을 버틴 그들의 마음-게이머(Gamer)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삶 자체가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임과도 같은데, 어째서 게임은 즐기며 찾아서 하는데 반해 삶은 그렇지 못한 때가 많은가. 문득문득 내가 왜 사는가 싶은 순간- 내게 주어진 미션이 무엇인지 모를 때, 때때로 가족, 친구, 동료, 이웃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일상은 반복될 뿐 삶에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듯한 순간이 떠오른다.

삶을 게임처럼 목적을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와 함께하며 조그만 성취에도 특별한 말 한마디, 따스한 식사 등의 작은 보상을 주고받으며 이어 나가면 티레니아와 그 백성처럼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멋진 신세계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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