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지된 사랑’ 두 여인의 뜨겁고 아름다운 로맨스

2020-0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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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불타는 여인의 초상화’(Portrait of a Lady on Fire) ★★★★½ (5개 만점)

▶ 여류감독 셀린 시암마, 화가-모델의 내면세계
섬세하고 유려한 연출, 연기, 세트, 촬영 뛰어나

‘금지된 사랑’ 두 여인의 뜨겁고 아름다운 로맨스

초상화가 마리안과 그의 모델인 엘로이즈(왼쪽)가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은근히 타들어가다 전신에 열기가 오르면서 자기 몸을 불사르는 촛불과도 같이 뜨겁고 아름답고 이별로 마감되는 두 여인의 못 이룰 사랑의 이야기로 프랑스 영화다. 고요하고 은근하며 민감하고 깊고 정열적인 화가와 모델의 격정적인 로맨스가 낭만파의 글처럼 로맨틱하게 서술된다.

형식적으로 대담하고 엄격하며 감정적으로 폭풍전야의 고요 후에 몰아닥치는 사나운 바람의 모험정신을 지닌 작품으로 처음이 다소 느리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휩쓸어버리는 강렬한 힘을 지녔다.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한 영화로 여류 감독 셀린 시암마의 섬세하고 유려한 연출과 레즈비언의 사랑과 성적 각성에 휘말려든 두 주인공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화학작용 그리고 의상과 세트와 촬영 등이 모두 뛰어나다.


상징성이 많은 이 영화는 본격적인 음악을 안 쓴 것이 특징이다. 대서양 해변의 바람과 파도 소리를 절묘하게 효과적으로 쓰면서 두 여인의 내면의 소리와 응시와 감정적 교류를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사용된 음악이라곤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비발디의 ‘사계’와 영화의 작은 서브플롯을 이루는 마을 여인들의 영탄조의 무반주 합창. 이 합창이 영화에 저 세상적 분위기마저 부여한다.

제목처럼 영화에서 여류화가가 그린 귀족가문 여자의 초상화는 불태워지는데 이와 함께 모델이 입고 있는 긴 녹색 드레스의 옷자락이 실제로 불에 타기도 한다. 불은 두 여인의 뜨거운 사랑이자 이 금지된 사랑을 태우는 상징으로 쓰인다.

1770년 프랑스의 브리타니 해변마을의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 집에 젊고 정열적이며 아름다운 여류화가 마리안(노에미 메를랑)이 도착한다. 백작부인이 딸 엘로이즈(아델 아넬)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른 것. 마리안의 아버지도 화가로 그는 백작부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백작부인은 마리안에게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본인 앞에서 그리지 말고 낮에는 딸의 말동무로 행동하다가 기억한 인상을 바탕으로 밤에 그리라고 말한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는 밀라노에 사는 엘로이즈의 장차 남편에게 보낼 것으로 물론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마리안 이전에 고용된 남자화가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려 했으나 엘로이즈가 모델이 되기를 거부해 실패해 마리안이 고용된 것. 엘로이즈가 모델이 되기를 거부한 것은 모르는 남자와의 결혼에 대한 항거와 함께 언니의 의문의 죽음 때문이다. 언니가 억지 결혼에 반대해 자살한 것처럼 암시되고 있다. 엘로이즈는 언니의 죽음 후 수도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엘로이즈와 마리안의 첫 만남부터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묘한 감정의 교류가 느껴진다. 물론 내면을 걸어 잠근 엘로이즈는 처음에 마리안을 형식적으로 차갑게 대하지만 둘이 방에서 그리고 해변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 간에 영육의 사랑과 정열이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은 두 사람의 육체적 성행위와 둘의 감정의 오감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졌다. 마지막 장면이 허탈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체념조의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대화가 많지 않고 두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사람으로 백작부인 집의 하녀(루아나 바라미)가 있는데 이 하녀는 마리안과 엘로이즈의 금지된 사랑의 협조자 노릇을 한다.

R등급. Neon. 랜드마크(피코 & 웨스트우드) 등 일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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