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의 릴레이

2020-01-22 (수) 송온경/ 시인
크게 작게

▶ 독자·문예

열두 달이 망년회로 모였다
생일을 앞둔 일월,
밤빛 아래 비친 얼굴이 하이얗게 빛난다

샛맑은 일월과 파릇한 삼월 사이에 낀 이월은
이슬진 눈빛으로 난 존재감이 없어
하고 외쳐보지만 그 목소리마저 묻혀버린다

달보드레한 목련 꽃 봉오리에 무심했던
삼월의 입김이 녹아들고 사월은 생그레
웃는 벚꽃들이 사늑하여 지그시 눈을 감고 만다


오월은 봄바람에 실려 온 감미로운 꽃향기에
여윈 잠을 자고 유월은 장미향을
맡으며 모처럼 조깅하러 나섰다

산과 바다로 놀러나간 칠월과 팔월이
해거름녁 돌아오자 갑자기 바빠진 구월이
선바람 쐬러 가을행 기차를 탄다

시월은 해뜰 참부터 알록달록 차려입은 나무들이
살틀하고 십일월은 막새바람
따라 바실 바실 떠나는 채색 날개들로 인해
살난스럽다

십이월은 소나기눈으로 하얀 드레스 입고 선
나무들의 초연함에 이즈막 하도록 더
나은 새해를 기원하며 하얗게 마음을 비운다

<송온경/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