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2막! 서울 신내노인종합복지관 ‘시니어 IT 봉사단’
배움기쁨터 ‘스마트폰 활용’ 교육, 시니어 봉사자 4명이 강사 도와
▶ 영어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 직관적 설명으로 맞춤형 교육
“처음 배울 때 어려움 떠올리며 열 번 물어도 친절하게 반복” “스마트폰이 열어 준 신세계, 다른 노인들도 꼭 배웠으면”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신내노인종합복지관에서 ‘스마트폰 활용’ 교육 수강생들이 이날 스마트폰으로 만든 연하장을 꺼내 보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신내노인종합복지관 시니어 IT 봉사단 소속 박중수(왼쪽부터), 양옥희, 채정옥, 김정희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중랑구 신내동 신내노인종합복지관에서 스마트폰 활용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시니어 IT 봉사단 소속 박중수씨가 자신의 터치펜을 활용해 수강생의 스마트폰을 직접 조작하며 강의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배우한 기자]
“자, 플레이스토어(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앱) 장터 이름) 찾아봐요.”
“플레이 뭐?”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에 숨겨놨을까? 여기 있네. 이렇게 세모 모양으로 생긴 이게 플레이스토어 앱이에요. 너무 안 써서 구석에 박혀 있었네. 이젠 ‘홈’ 화면에 빼서 써요.”
“홈 화면은 또 뭐요?”
“할아버지가 스마트폰 켜면 제일 먼저 나오는 화면이 홈이에요.”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신내노인종합복지관 배움기쁨터 교실에서 진행된 ‘스마트폰 활용’ 수업. 강사가 앱 장터에서 ‘글그램’이란 앱을 다운 받아 모바일 연하장을 만들어 보자며 대략적인 방법을 설명한 뒤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됐다.
돋보기 너머로 휴대폰을 지긋이 들여다보고 있는 30여 명의 수강생 사이를 4명의 도우미가 부지런히 오가며 실행 방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대화 내용만 놓고 보면 젊은이가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조작법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치는 거라 여기겠지만 웬걸, 도우미 역시 일흔 넘은 노인이었다. 능수능란하게 기기를 다루는 모습이나 적시에 ‘꿀팁’(유용한 정보를 일컫는 말)을 일러주는 모습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여느 젊은이와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할머니는 요금제 뭐 쓰세요? 인터넷 속도가 느린 걸 보니까 요금제 싼 거 쓰시나 봐. 복지관에 무료 와이파이 있는데 이거 쓰면 돈도 안 내고 인터넷 더 빨리 쓸 수 있어요. 스마트폰 이리 줘봐요. (복지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준 뒤) 이제 복지관 오면 인터넷 공짜예요. 마음껏 하셔도 돼.”
“(스마트폰 앱을 실행하더니) 아이고! 이게 이렇게 빨리 켜져요? 이게 다 공짜라고요? 앞으로 우리 선생님들 수업 들으러 계속 와야겠네.”
동년배 수강생에게 ‘선생님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신내노인복지관의 ‘시니어 IT 봉사단’이다. 이 복지관은 2018년부터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분기엔 수강 정원(30명)의 4배가 넘는 130여 명이 신청을 했고, 복지관의 통상적 수업과 달리 결석률도 낮다. 수업에 꼬박꼬박 참석해 질문을 쏟아내는 수강생들의 열의에 복지관은 강사를 도와 원활하게 수업을 진행할 봉사단을 조직했다. 그 자신이 스마트폰을 통해 ‘인생 2막’을 풍성하게 보내고 있는 시니어들로 말이다.
삶의 굴곡을 넘어 만난 친구2년째 봉사단에서 활동 중인 양옥희(71)씨는 전형적인 ‘엄마’의 삶을 살았다. 젊은 시절 남편과 파이프 사업을 했고 낚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고 나니, 자식들이 자식을 낳았다. 손주를 돌보는 데 4년을 쏟아부으면서 병든 부모님의 뒷바라지까지 했다.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환갑. 양씨는 “그때 회한이 밀려왔다”며 “앞으로의 시간은 내 자신에게 알차게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후 젊은 시절부터 배우고 싶었던 한문, 컴퓨터 등을 익히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던 2017년 양씨의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졌다. 양씨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복지관에서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웠다”며 “제대로 사용할 줄 알게 되니, 밤에 호롱불을 켜면 책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어두웠던 세상이 스마트폰으로 환해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스승이자 길잡이’라고 부른 양씨는 “이렇게 좋은 걸 다른 노인에게도 권하고 같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기꺼이 교육 봉사단에 참여했다”고 했다.
양씨와 함께 2년째 봉사단원인 박중수(78)씨는 복지관에서 ‘박사님’으로 통한다. 2008년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터라 젊은이들과 견줘도 전혀 젊은이들과 견줘도 전혀 손색 없을 만큼 스마트폰을 잘 다뤄서다.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한 게 2007년이니 사실상 스마트폰 초창기에 진입한 보기 드문 ‘실버 얼리어답터’인 셈이다.
박씨에게 스마트폰은 힘든 시절을 보내고 만난 ‘친구’였다. 30대에 건설 사업을 시작한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넘기고 환갑이던 2002년 은퇴했다. 이번엔 협심증이란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그땐 일흔까지도 못 살 줄 알았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뭐라도 도전해볼 걸 그랬어.” 이제는 웃으며 돌아볼 여유가 생긴 그 시절 그에게 스마트폰은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준 만능 도구였다. 박씨는 “서예를 좋아하는데 각종 서체를 스마트폰으로 찾아볼 수 있었고 한자 검색도 편했다”며 “스마트폰만 잘 쓸 줄 알아도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데 주변에서 전화할 때만 쓰는 걸 보고 안타까워 교육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어도 터치도 너무 어려워나이 들어 첨단 기기를 접하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봉사단이지만, 그럼에도 노인들에게 스마트폰을 잘 쓸 수 있게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업은 △스마트폰 화면 종류 △터치 방법 △연락처 관리 △지하철ㆍ버스ㆍ내비게이션 앱 사용 등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되지만, 수강생들이 이를 숙지하기까지는 단원들의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스마트폰 교육의 또 다른 걸림돌은 영어다. 봉사단원 김정희(79)씨는 “70, 80대는 영어를 배우거나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터라 알파벳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앱 이름을 비롯한 스마트폰 용어에 영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수강생들이 초장부터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예컨대 앱을 설치하려면 반드시 접속해야 하는 플레이스토어 앱만 해도 화면상에 ‘play스토어’라고 표기돼 있어 노인들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김씨는 노인들의 이런 사정을 감안해 ‘직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앱은 제각기 생김새(아이콘)가 다른 만큼 이를 활용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플레이스토어만 해도 재생 버튼을 형상화한 세모 모양”이라며 “비디오를 틀 때 재생 버튼을 누르듯이, 스마트폰에서 세모 버튼을 찾아 터치하면 앱들을 살 수 있는 ‘가게’가 나온다는 식으로 맞춤형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예전 폴더폰에 익숙한 노인일수록 스마트폰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고 한다. 물성이 있는 버튼을 누르던 관성이 스마트폰 조작의 가장 기본적 개념인 ‘화면 터치’를 이해하는 걸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홈화면에서 터치를 오래하면 위젯(바로가기) 옵션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왜 빈 화면을 꾹 누르고 있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봉사단원 채정옥(69)씨는 “화면 전체가 사실상 모두 ‘버튼’인 셈인데 이걸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터치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천천히 반복적으로 알려드려야 한다”고 눈높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이 과정에서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채씨가 당부하는 바다. “우리가 처음에 배울 때 잘 몰라 헤매던 걸 떠올려 보라. 열 번 넘게 같은 걸 물어봐도 처음 가르치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스마트폰이 노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스마트폰 배우면서 인생 새 막 열어가”
시니어 봉사단의 ‘이심전심’ 교육이 통한 덕분일 터. 수강생들은 입을 모아 “수업 듣길 잘했다”고 한다. 강모(75)씨는 이날 수업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과 ‘멋진 가을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연하장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강씨는 “자식들이 스마트폰을 사줘도 전화랑 문자메시지만 겨우 보내는 정도였다”며 “복지관에서 봉사단 선생님들이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준 덕분에 이렇게 연하장도 척척 만들어낼 수 있으니 스스로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 할머니 수강생은 봉사단에게 꼭 하고픈 말을 기자에게 전했다. “그저 스마트폰 하나 쓰게 해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요. 아무리 늙었어도 새로운 걸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욕구는 계속 있기 마련이에요. 스마트폰에 대해 하나 하나 알아갈 때마다 소소하지만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같은 노인이지만 우리에게 가르치는 시니어 IT 봉사단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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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