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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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불교칼럼 2제]

2020-0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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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 (동진 스님 / SAC 영화사 주지)

한창 공부할 때 참선중에 멀리 눈앞의 종각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마치 신기루처럼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앉아 보았다. 그 미묘한 색색의 미립자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엔 텅 빈 허공이 남았다. 그 순간 존재의 공성을 알았던 거 같다. 대체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건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저, 미추, 분별 따위의 질문이 허공으로 같이 흩어졌다. 만물은 저마다 인연시절로 집산할 뿐, 존재,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무아이며 무상임이 알아진 것이다. 이것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다. 다시 종각은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이미 그 종각은 전의 종각이 아니었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겉으로 보여지는 이 중의 모습이 뭐 그닥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오랜만에 유리창 위 커튼을 확 뜯어버린 그런 느낌이랄까...시원하고 삶이 환해졌다. 비로소 멀리서 다른 나라 말처럼 들리던 부처님의 말씀, 큰스님 말씀이 절로 알아졌다. 통역 없이 다른 언어를 알아듣는 순간처럼 편안해졌다. 마음이 열린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이다.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시비에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주체적으로. 간혹 처에 따라 걸리는 존재가 눈에 보인다 해도, 그것이 유형의 존재가 아니라, 내 안의 존재임을 꺼내들 수 있어서, 바로 걸림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중이 도달한 공부의 끝은 아니다. 그러나 이 도리만으로도 삶은 많이 변했다. 그래서 이 도리를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랬다.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처한 자리에서 바로, 대단히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음을. 그저 식자로가 아니라 본인이 체달하여 알았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다 여겼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언어로써 만의 소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론, 좀 막막해졌다. 물을 억지로 먹일 순 없다. 스스로 목이 말라야 한다. 목마르지 않다는데 물을 주는 격이다. 여하튼, 기해년도 흘러 연말이 되었다. 기해년이라는 어떤 존재가 있다가 어디로 간 것이 아니다. 시절인연이 변화한 것뿐이다. 인연 집산에 따라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겨울이 되고, 다시 봄이 되고... 자연 법칙에 따라 반복 변화 하는 와중에 있는 것이지, 무엇이 있어 어디로 간 것이 아니다. 갈 수도 없다. 사람도 그렇게 몸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있다고 여겨지는 그 몸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흘러가고 변화하는 것이다. 각자의 업에 따라 다르게 변화한다. 그렇게, 새는 날고 꽃은 피는 와중에, 연기법에 따라 삶도 집하고 산하는 것인데. 그게 영 와 닿기 어렵고 죽어도 있어서, 세월은 가고 사람은 죽는다, 이다. 설령 인연 집산일 뿐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중생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어떻게 해서든 오래 머무르고 싶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세월 가는 것이 아쉽다. 사라지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애초 없다면 무엇이 사라지겠는가. 그 공성의 의미를 안다면 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허심탄회하지 못한 것은 있다, 라는 집착에서 온 것이다. 그것이 온전히 착각이라고 해도, 안 믿어진다. 믿든 안 믿든. 어느 세상에서든 가는 것은 없다. 가는 것이 없다면 또한 당신도 갈 수 없다. ‘이미 가버린 것에는 가는 것이 없다. 아직 가지 않은 것에도 가는 것은 없다. 이미 가버린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떠나서,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에도 가는 것은 없다. ’ ㅡ

고성통신 (진월 스님 / 고성선원장)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제 초이틀은 음력으로는 납월초파일(섣달 초여드레). 중국과 한국 등, 이른바 북방불교의 동북아시아전통에서는, 인도 북부 카필라국 태자 싯다르타가 정반왕궁을 떠나 출가한지 여섯째 해에 남부 마갈타국 가야 (현재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크게 깨치시고 도를 이루어 붓다(Buddha 깨달은 분)가 되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후로 석가모니 Sakyamuni 라 불림). 물론, 스리랑카와 태국 등, 남방불교의 동남아시아전통에서는 베삭절(오월 보름)에 탄생 및 열반과 함께 기리고 있습니다만. 불교에서는 깨침으로 지혜를 이루고, 지혜는 밝음이며 빛으로 상징되어 왔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스스로 마음을 살피고 가다듬어 정신세계를 밝혀서 지혜롭고 올바르게 살아야 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 공동체와 온 세상을 올바르고 평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자연 물리적 새해에 즈음하여 인문 정신적 최고의 지혜를 성취한 세존의 성도절을 맞음은 아주 좋은 전조이며 경사로서 봉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상서로운 시절에 인도 붓다가야에서 델리대학 불교학과 주최로 열리는 수련 워크숍에 초청되어, 다음 주에 그곳에 가서 강연하고는,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과 아울러, 탄생지인 룸비니와 열반지인 쿠시나가라 등의 성지순례에 참여하며, 역사적 유적과 당시정황을 새삼 되새겨 보려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모두 깨침의 길로 나아가시며, 올해 내내 밝고 건강하시어, 지혜와 자비를 키우시는 기쁨과 보람 크시기를 축원합니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 모두 의회를 새로 구성할 총선이 있고, 미국에는 대선도 있습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자기를 대신할 인물로서 충직한 공복을 선출하여야 하며, 이는 자기를 포함한 국가사회의 발전과 운명을 가름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인물을 선출하여야 나중에 후회와 아쉬움이 없을 줄 압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남북의 평화통일과 공동번영 정책을 추구할 인물을, 미국에서는 세계 우방과의 공신력 있는 연대와 협조로 지구촌의 공존공영 및 기후와 환경 생태계의 미래에 안정을 이루는데 지도적인 인물을 뽑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금년에 미국에서는 인구센서스 조사도 있습니다. 빠짐없이 모두 참가하여 개인 및 사회복지와 공공정책 수립에 소외되지 않도록 유념하여야 하겠습니다. 선거 투표와 현황 조사에 참여함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이며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미리미리 일깨우며 거들어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 나가기를 다짐할 때입니다.

이곳 샌프란시스코는 프란시스코 성인을 기리며 그분의 뜻과 삶을 이어가자는 염원을 보이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본래 이탈리아 아씨지 출신인 그분은 천주교 수도자로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살며,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애썼음이 전해집니다. 소납은 샌프란시스코 성인을 불교 수도자의 현지에 따른 다른 모습으로 보며, 관음보살의 화현같이 생각합니다. 인류의 최대 참사였던 제2차세계대전을 마무리하며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한 유엔(UN 국제연합)이 창설된 곳이 샌프란시스코였으며, 종교적 유엔을 지향하는 유알아이(URI 종교연합)가 창설된 곳도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천연적으로 아름다운 베이지역이지만, 문화적으로도 빼어난 이곳에 살면서,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인들 모두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아울러,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며, 지구촌에 널리 평화를 펼치려는 열린 마음과 보살핌에 축복이 있기를 새해 벽두에 기원합니다.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구제하시는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와 크신 자비가 온 누리에 항상 가득하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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