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는 일상이 시작된다. 8시 10분 한창 바쁜 아침 출근시간이다. 사람들은 보통 병원가는 날을 특별한 날로 정해놓고 의사와 상담한다. 그런데 나는 출근 하듯이 무감정으로 일상이 시작된다. 택시가 문 앞에 시간 맞춰 기다리고 있다.
“기사님, 9시까지 엘머스트 병원 브로드웨이 77-11 까지 갈 수 있죠?”
핸들을 잡고 묵묵히 앞만 보고 달리는 기사님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기사님은 첫 인상과 달리 살갑게 응답을 했다.
“ 글쎄요, 워낙 막히는 시간이라서요. 오늘은 왜 혼자 가세요?” 하며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또 조용히 지나기를 약 30분이 지나고 있을 즈음 내 셀폰이 요란히 울렸다.
“ 여보세요 !, 가타리나씨? 오늘 병원에 오는 날인데 잊었나 해서요.”
“ 네, 지금 가고 있어요. 고속도로가 너무 막히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택시에 앉아 고속도로 양편에 띄엄띄엄 곱게 물든 단풍에 빠져들곤 했다.
올해는 제대로 물든 단풍을 보지 못한다. 도시로 나갈수록 단풍이 아닌 낙엽으로 변해 가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짖고, 지금 아시안 정상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의장 지휘로 우리나라에서 회의 중이다. 모든 10개국 정상들이 한뜻이 되어 화해의 무드다.
지독한 자동차 매연과 각종 생활 매연 탓일 것이다 하면서도 그냥 보내는 가을이 아쉽다. 그동안 8개월이라는 세월은 나에게 악몽이다. 항암 치료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병원 정문에 도착했다. 20분 늦었다. 또 한소리 듣겠다 했다.
2층으로 올라가 레지스트 창구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에바 가드너처럼 매력있게 생긴 그녀는 고개를 길게 빼고 나를 처다 보고 씽긋 웃어 주었다. 다시 서류를 건네주며 빨리 6층 항암실로 가라고 했다. 생각한 대로 병실에 들어서자 중국간호사 미스퐁이 한마디 한다. “6시간 주사 맞아야 하는데 너, 너무 늦겠다.” 하며 덜 반가운 말투다.
정확하게 오후 4시40분 고정된 의자에 앉아 주사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목에 달고 올 항암 펌프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의 수고 했다는 인사를 뒤로 하고 병원 앞 택시 승강장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 했다. 발갛게 물든 석양과 함께 택시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지난 6월 항암 시작 할 때는 앞이 아득 했다. 하지만 참고 견딘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갔다. 9차 항암이 어제 끝나 12월 의사 상담이 끝이 나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들 마음이나 다를 바 없는 마음이다.
그저 결과가 좋아졌다는 의사의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15일후 10차 항암때쯤이면 모두 고사 해 버릴 나뭇잎을 바라보며 차창에 스쳐가는 계절에 나는 이렇게 인사했다.
가을이여
안녕----!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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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임/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