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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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신] 해짐을 바라보며

2019-12-05 (목) 진월 스님 / 고성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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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섣달입니다, 올해 살림을 마무리하며 새해맞이를 준비할 때입니다. 적막한 산위에는 더러 눈보라나 진눈개비가 내리기도 하고, 차가움과 추위로 겨울이 본 모습을 보이며, 지난 세월의 자취를 흩어버리고 씻어내려는 듯이 서녘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찬바람에 모든 것이 움츠리며 내려앉고 있습니다, 봄을 내다보면서. 시중에서는 설사 비바람이 불어와도 대중의 집단열기로 싸늘함이 미루어지고, 연말과 연시의 행사장식과 음악 등으로 설렘도 일으키며 분위기를 들뜨게 합니다만. 절기로 동지(冬至)가 다가오니, 겨울도 그 극도에 이르면 봄이 오리라는 기대 속에서, 사람의 살림살이도 우주의 순환 절기에 따라, 그동안 활발하게 벌려 두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차분하게 거두어 드리고 정리하여 마땅한 매듭을 지으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삶을 되새김하면서,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가질 줄 압니다.

금년 초반부터 “3.1독립운동100주년”과 “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 기념하는 일들이 한국내외의 배달겨레 동포사회에서 다양하게 펼쳐져왔습니다. 이곳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도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비롯하여 한인단체들이 뜻과 힘을 모아, 3.1절을 중심으로 관련행사를 열었습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그 독립운동정신으로 남북통일을 위한 일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야 함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한 겨레의 분단을 극복하고 민주적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숙제를 해결하는 길이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는 일로서, 이는 우리들의 역사적 과업과 시대의 공동사명처럼 느껴집니다. 독립운동의 요람지였던 이 지역의 주민들이 통일운동에도 선구적 역할을 할 필요를 느낍니다. 100년전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33인들은 모두 종교지도자였습니다. 이제 이곳에서도 종교인들이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서 나가야 될 줄 압니다. 소납부터 이 운동을 위하여 목사님과 신부님, 스님과 교무님, 다양한 영적 지성인들과 소통하고 의논하는데 솔선하여야 할 소명을 느낍니다. 용성조사와 만해선사 등 불교 선각자들은 국가와 민중의 구제를 대승보살행으로 삼아 실천하셨는데, 통일운동에도 불자들의 선도적 동참이 요청됩니다. 동기와 의도가 순수하고 진지하면 대중이 공감하고 함께 할 줄 믿으며, 대화와 연대를 위한 과정도 값진 일이므로, 다만 공심으로 매진할 따름입니다.

근래에 “공공외교(公共外交)” 또는 “민간외교(民間外交)”라는 말이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제도적 절차와 직업외교관들의 활동과는 별도로, 다양한 민중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현실적 저변의 비정부 민간인 외교 관계로서, 크게 들어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광범위하게 열려있으며 실질적인 효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 시민들을 친구로 삼아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 사정을 이해시켜서,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대표로서의 의회와 정부의 정책 입안 및 수행 등에서 한국의 필요에 협조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에도 미국이 진정으로 한국의 입장을 공감하고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공공외교의 주역이 되어, 각자의 주어진 환경과 현지상황에 맞추어서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평화실현에 기여하면, 그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황혼에 서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아름다운 연합국”에 새 빛의 출현을 기다리면서, 온 누리의 모든 생명들에게 평화가 따뜻하게 깃들기를 빌며, 두 손을 모읍니다.

<진월 스님 / 고성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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