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 일반사회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데다 표현이 멋들어진 것 같아 고교시절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달달 외웠던 기억이 있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나쁜 화폐가 좋은 화폐를 몰아 낸다”는 뜻이다.
대등한 액면가의 순수 금화(양화)와 합금주화(악화)가 같이 유통될 경우 사람들은 합금 주화는 거래에 이용하고 순수 금화는 그냥 가지고 있으려 든다. 그러면서 점차 시장에서 양화는 사라지고 악화만 유통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레샴의 법칙이다. 튜더왕조 시절 재무관이었던 토머스 그레샴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내는 현상은 인간사 전반에 걸쳐 아주 강력한 ‘경향성’을 드러낸다. 습관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니 그레샴의 법칙이 비단 수백 년 전 영국 화폐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지식 또한 마찬가지다. 1978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잘못된 경제이론이 지식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하며 이것을 ‘지식시장의 그레샴 법칙’이라 불렀다. 그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거짓 지식이 옳은 지식을 몰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버트 사이먼은 이미 수십 년 전 현 시대를 꿰뚫어 본 것 같다. 거짓 지식과 거짓 정보, 가짜 뉴스가 온 세상을 뒤덮으며 진실의 행세를 하고 있는 세태를 말이다. 거짓의 힘은 대단히 강력하다. 2013년 UC 데이비스의 정치학자인 셰릴 보드로 교수는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도 그레샴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보드로 교수는 유권자들에게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할 경우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결정을 내리지만, 이런 정보와 함께 신뢰도가 떨어지는 정보를 같이 제공하면 거꾸로 자신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정을 내리거나 정치적 참여 자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수준이 낮거나 생각이 잘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왜 정치판에서 네거티브가 판을 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이렇듯 정치판에서도 “나쁜 정치가 좋은 정치를 몰아내는” 그레샴의 법칙이 작동한다. 하지만 거짓 정보, 가짜 뉴스보다 더 심각한 것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인물들은 정치를 회피하고 도덕적·인격적으로 문제점투성이인 인물들이 정치권을 장악하는 현상이다. 현대정치에서는 과거와 같은 명망가들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판 그레샴의 법칙을 일찍 간파하고 진단했던 인물은 100여 년 전 영국 옥스퍼드의 민법학자 제임스 브라이스 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 ‘왜 훌륭한 인물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하는가’(Why Great Men Are Not Chosen Presidents)에서 경쟁과 이전투구로 요약되는 정당정치의 본질상 정말 훌륭한 인물들은 지도자로 선출되기 힘들다고 봤다. 그의 이런 진단은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증오조장과 상대 죽이기가 일상화된 21세기 정치에 훨씬 더 설득력을 가진다.
대통령은 그렇다 해도 인사청문회가 먼지털기 식 검증으로 변질되면서 이제는 괜찮은 장관 갖기도 힘들게 됐다. 조국사태를 거치며 장관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이 어김없이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후보 고르기조차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공직후보자들이 거쳐야 하는 의례가 괴롭힘의 기회로 악용되는 한(ritual hazing) 좋은 인물들이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 전도유망하던 여당의 초선의원 두 명이 총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데 이어 지난주에는 합리적 보수라는 평가를 받아온 40대 야당의원이 자유한국당 해체를 주장하며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정작 떠나줘야 할 구태 정치인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결국 이런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건 국민들뿐이다. 국민들이 무관심으로 방치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하면 정치의 악성화는 고착될 수밖에 없다. 그레샴의 법칙이 정치판을 지배한다지만 간혹 유권자들은 이런 경향성을 확 뒤집어 버리는 선택을 함으로써 역사를 정체와 퇴행의 수렁에서 건져내곤 했다. 지금이야말로 좋은 정치가 나쁜 정치를 몰아내는 ‘역 그레샴의 법칙’을 작동시킬 시민혁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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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