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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람이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수족관 고래, 라쿤 카페…도시 야생동물들 신음이 안 들리는가

2019-11-13 (수)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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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아쿠아리움에 살던 흰고래, 벨리·벨로 평균수명보다 일찍 사망
야생동물 카페는 2년 새 2배 늘어, 무분별한 먹이체험 내몰린 라쿤...비만 등 건강이상에 시달리기도

▶ 야생동물 복지는 무소유서 출발, 미등록 시설에서 전시 금지 등 야생동물법 개정안 국회 통과돼야

[동그람이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수족관 고래, 라쿤 카페…도시 야생동물들 신음이 안 들리는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폐사한 흰고래 ‘벨리’의 생전 모습.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제공]

[동그람이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수족관 고래, 라쿤 카페…도시 야생동물들 신음이 안 들리는가

세균성 골수염에 감염된 왈라비. 사육되는 캥거루과 동물에서는 죽음을 부르는 가장 흔한 질병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동그람이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수족관 고래, 라쿤 카페…도시 야생동물들 신음이 안 들리는가

개 사료를 라쿤에게 먹이로 주고 있다. 먹이주기 체험에 제한이 없을 경우 비만, 영양 불균형 등 건강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먹이에 흥분한 동물이 사람을 물 수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동그람이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수족관 고래, 라쿤 카페…도시 야생동물들 신음이 안 들리는가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카페를 찾은 손님이 꼬리를 다친 코아티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빌딩에 살던 고래가 죽었다.’

야생동물 빈국인 한국의 빌딩에서 고래가 죽었다고? 판타지 소설 속 문장 같지만 며칠 전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울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살던 벨루가(흰고래) 벨리가 죽었다. 북극해를 헤엄치고 다녔을 벨루가가 서울 한 복판의 빌딩 속 좁은 수조에서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벨루가의 평균 수명은 30~35살이다. 그런데 벨리는 12살에, 3년 전에는 벨로가 5살에 같은 수족관에서 죽었다. 8살 벨라만 수조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롯데가 2014년에 제2롯데월드를 개장하면서 희귀동물인 벨루가 3마리를 수입해서 전시를 시작할 때 동물단체는 반발했다. 수족관에 갇혀 사는 고래는 각종 정신ㆍ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짧은 삶을 마치고 죽기 때문이다. 시속 22㎞로 북극해를 유영하는 그들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좁아터진 수조에 사니 멀쩡한 게 더 이상하다.
또 벨루가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근접종이다. 전시 목적으로 동물을 수입하는 곳은 관람객이 좋아하는 어린 개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멸종에도 영향을 끼친다. 러시아는 돈벌이를 위해 매년 무분별하게 야생 벨루가를 포획해서 중국, 한국 등에 비싼 가격에 판다.

인간의 돈벌이 때문에 포획돼 전시되던 벨루가는 결국 고향과는 동떨어진 나라의 빌딩에서 숨을 거뒀다. 롯데는 3년 전 벨로가 죽었을 때 동물단체와 더 이상 고래류를 전시하지 않겠다고 합의했었다. 홀로 남은 벨라의 운명이 다시 인간의 손에 맡겨졌는데 다행히도 최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결정됐다. 벨루가는 무리 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벨라가 혼자 남겨진다면 결말은 뻔했다. 전시동물로 이용돼 온 고래류의 바다 방사는 세계적인 추세다. 이번 결정이 아직 이 땅에 남아서 쇼를 하고 전시되며 고통 속에 있는 고래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데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롯데 아쿠리리움 외에도 한화아쿠아플라넷과 거제씨월드에서 벨루가를, 여러 곳에서 고래를 소유하고 있다. 고래류의 수입·전시를 강화ㆍ금지하는 법 개정으로 고래를 원서식지가 아닌 곳에서는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의 빌딩은 야생동물이 머물 곳이 아니다.

우후죽순 늘고 있는 실내 동물원과 야생동물카페

도시에는 예전부터 야생동물 서식지가 있었다. 동물원이다. 교육과 종 보전 등 여러 이유를 대며 여전히 존속하고 있지만 동물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전과 같지 않다. 지난해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사살 사건으로 ‘동물원 폐지’ 청원이 올라왔을 정도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19대 국회의 끝자락에 동물원 및 수족관법이 겨우 통과됐지만(중요한 내용이 많이 삭제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이후 개정을 통해 개선을 해나가고 있는 상황에 최근에는 실내 동물원, 야생동물 카페라는 난적이 등장했다. 야생동물 복지를 위한 발걸음은 한 걸음을 앞으로 떼기가 힘겨운데 실내 동물원, 야생동물 체험 카페의 확장 기세는 엄청나다.

동물원의 환경이 열악해도 야외에서 햇볕도 쬐고, 바람도 맞는 것과 달리 실내 동물원과 야생동물 체험 카페는 폐쇄된 실내라는 것이 야생동물의 원서식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야생동물카페는 좁은 공간에서도 쉽게 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꽤 오래 전에 라쿤 카페가 문을 열었는데 닫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 달리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야생동물카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련 법안 개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단체인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달 ‘2019 전국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조사 때 35개였던 야생동물카페는 2년 사이 64개로 늘었고, 그 중 18개 업소가 서울에 밀집해 있다. 2년 전에 비해 카페 수도 늘고, 전시되는 종도 는 반면 위생과 관리 문제, 동물들 상태의 열악함은 여전했다. 먹이주기 체험, 동물 접촉도 빈번했다. 물을 흘리거나 소변을 자주 보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물을 상시적으로 공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수의학적 처치를 제공하지 않아서 외상이나 질병을 가진 동물도 많았다. 질병으로 몸에 염증이 있는 왈라비가 여전히 만지기 체험에 내몰리는 현장은 끔찍했다. 사람들에게는 야생동물카페가 귀여운 동물을 보고 만지면서 찰나의 쾌락을 얻는 곳이지만 야생동물에게는 생지옥이었다.

외래동물 국내 생태계 교란하는데 손 놓고 있는 국회


이런 상황에서 카페를 탈출하거나 유기된 동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라쿤이 도시를 배회하는 모습이 최근 자주 목격된다. 우리는 이미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베스 등 외래종의 무분별한 수입과 야생 방사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심각하게 겪으면서도 또 실수를 반복한다. 일본의 경우 반려동물로 라쿤을 수입했다가 야생으로 퍼져 나가서 매년 천문학적인 세금을 라쿤 개체 수 관리에 쏟아 붓고, 유럽연합도 라쿤을 외래침입종으로 지정해 수입ㆍ사육ㆍ번식ㆍ판매를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야생동물은 빌딩 속 수조에, 동물원 철창에, 체험카페에만 있을까.
가정에도 수많은 야생동물이 산다. 소유한 동물의 습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없이, 습성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주지도 않은 채 희귀외래종들을 애완동물(반려동물이라고 볼 수 없다)로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라쿤, 미어캣, 사막여우 등은 물론 수많은 양서파충류도 방 한 구석에서 키워진다.

이런 상황을 바꿀 꽤 많은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국회는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 내년 상반기에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니 조만간 선거 국면으로 바뀔 테고 발의된 좋은 법안들이 다 폐기될까 봐 초조한 마음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은 동물원 및 수족관으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법안(이용득 의원), 야생동물 중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종의 판매를 금지하는 야생동물법 개정안(한정애 의원), 제한된 경우에만 허가를 받아 야생동물을 판매하고 인터넷과 택배 거래를 규제하는 야생동물법 개정안(이정미 의원) 등이다. 이것만 통과돼도 한국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삶이 조금은 개선될 것 같은데. 제발 일 좀 하기를!

야생동물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물론 도심의 자연 속에 사는 야생동물도 있다. 서울에 사는 야생 포유류는 30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슬프게도 ‘유해조수’ 딱지가 붙기도 한다. 인간들만 모여 살기에도 빡빡한 곳이다 보니 환영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서식지를 잃고 도시의 주택가에 자주 출몰하는 멧돼지는 대표적인 유해조수가 됐다. 외국에서는 이런 동물을 근접 야생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과 관계를 맺지 않고, 인간이 길들일 수도 없으면서 단지 먹이를 찾기 위해 인간의 주거지역에 자리 잡은 동물이다. 근접 야생동물이라는 단어가 유해조수보다는 덜 인간 중심적으로 들린다.

우리 동네에도 가끔 근접 야생동물인 너구리, 족제비가 나타난다. 근처에 서울 성곽, 궁궐이 있다 보니 그쪽에서 오는 것 같다. 한 해는 새끼너구리들이 나타나서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이웃들과 만나면 너구리 이야기로 신났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길고양이 밥이랑 과일껍질 등을 먹고 잘 지내가다 꽤 커서 떠났다. 이웃집 아저씨는 새끼들이 자기 집 창고에 머물면서 소변을 봐서 냄새가 진동을 한다면서도 쫓지 않고 새끼들이 크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골목에서 새끼너구리와 마주치거나 어둠 속에서 새끼들이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를 훔쳐 들으면서 야생동물과 공존하는 신비함을 느꼈다.

야생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돈벌이를 위해서 수많은 고래류를 잡아서 세계에 팔던 러시아가 지난 6월 수출을 위해 잡아뒀던 98마리의 벨루가와 범고래를 바다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세계적인 항의에 백기를 든 것이다. 야생동물을 본성대로 살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동의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어웨어의 보고서에 따르면 야생동물카페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서 카페 안내문을 외국어와 병기한 곳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관련법이 형편없어서 동물복지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동물들을 나라의 자랑거리라고 내놓을 수 있을까. 야생동물 복지의 첫 걸음은 그들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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