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얼터네이트 사이드 파킹

2019-11-13 (수) 이재남 / 맨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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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맨하탄에 산다. 차가 한 대 있다. 주차 공간은 없다. 길거리에 파킹을 한다. 무료 파킹, 공짜다. 그러나 공짜가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다. 청소차가 청소하는 시간에는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이면 No Parking사인이 붙은 곳을 찾아 이곳 저곳 헤맨다. 어떤 땐 멀리 가서 파킹하고 버스나 트레인을 타고 온다. 어떤 날은 잊어버리고 있다가 깜짝 놀라 뛰어가지만 재수 없으면 티켓이다. 급한 김에 택시를 타기도 한다. 티켓 100달러 대신 10달러가 훨씬 낫다. 청소시간은 1시간 반이지만, 내가 소비하는 시간은 2시간이 넘는다.

처음엔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이젠 프로가 되었다. 요령껏 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 즉 1시간 반 동안 그냥 차에 앉아 있으면 된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은 파킹이 아니다. 차에 사람이 없을 때 티켓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청소차가 오면 비켜줬다가 다시 파킹 하고는 차 안에 앉아 있으면 된다.


차 안에서 나는 안전벨트 하고, 줄곧 시동을 켜 놓는다. 음악을 듣고 히터를 틀고 쾌적하게 있기 위해서다.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밖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눈 감고 쉬거나, 할 일은 많다. 그리고 커피, 샌드위치, 과일, 고구마 같은 것을 갖고 가면 된다. 사실 무엇이든 해도 된다. 그저 밖에만 바라봐도 좋다. 재미있다.

하늘, 나무들, 거리, 사람들, 강아지들, 자전거, 차……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사람들 99% 이상은 다 아름답게 보인다. 그들도 내가 바라보는 걸 모르고, 그저 그들의 일을 하고 있는 하나하나가 다 특색 있는 존재. 오히려 뚱뚱하거나 좀 평균적이지 않은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예술가들이 모델 같은 사람을 그리기 보다는 차라리 농부나 일하는 사람을 그리는 이유 같기도 하다.

인위적이고 다듬어진 미보다 자연적인 것이 훨씬 예뻐 보인다. 혼자보다는 강아지랑 같이 있는 게 더 예뻐 보이고. 배가 나온 것도, 이상한 옷도, 머리 모양이 특이한 것도 가까이서 볼 때와는 다르게 다 멋지다. 세상은 자체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오늘도 아침 8시11분. 68가 Freedom Place에서 차 속에 앉아 있다. 8시3분 전에 왔다. Bagatelle for Piano in A Minor를 듣고 있다. Shuffle Radio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음악이다.
바람이 꽤 분다. 나뭇가지들이 멋지게 흔들거린다. 비둘기들이 아장아장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사람이 없으면 자기들의 안방같은 편안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개를 끌고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위해 아침 산책을 하나 보다. 나뭇가지들이 마구 흔들거린다. 이젠 Shelter From the Storm, Bob Dylan이 노래한다.

비둘기들이 난다. 참새도 날아간다. 가방 멘 아이들, 엄마랑 ,혹은 아빠랑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아침 시간이 분주하다. 순찰경찰차가 계속 돌면서 거리를 체크한다. 벌써 세 번째다. 이제 ‘스팅’의 Shape of My Heart. 그의 목소리가 좋다.

네 번째 순찰차가 천천히 돌고 있고, 한 남자가 개 세 마리를 끌고 간다. 휴지통에 똥을 던지고 간다. 쉴새없이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 길이 이렇게 분주한 길이었는지 처음 느낀다. 낮에 이 길을 걸을 땐 언제나 한산했는데. 주차단속 하는 여자가 지나간다. 차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아, 벌써 8:40분, 이제 50분이 남았다. Last Kiss Goodbye, 음악이 흐른다. 하늘을 본다. 아파트를 본다. 뛰는 남자가 지나간다. 42분 남았다.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서 건물 중간에 앉는다. 깡마른 흑인 젊은 여자가 뛴다. 한 남자가 나를 보며 지나간다.


갑자기 낌새가 이상하다. 차가 움직인다. 뒷차도 움직인다. 미러를 보니 청소차가 왔다. 차를 옆으로 비키니, 청소차가 길바닥의 쓰레기를 훑고 지나간다. 옆으로 비켰던 차들이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온다.

드디어 끝. 남은 18분. 편안히 앉아 있다가 가면 된다. 12분 남았네. 커피 마셔야지, 카톡도 봐야지.

아, 좋다. 9:30 AM. 드디어 시동을 끈다. 거리로 나와 걷는다. 나는 집으로 간다.

<이재남 / 맨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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