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신과 같이 한 45년을…행복합니다

2019-11-13 (수) 배수자/ LI 글렌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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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될까요. 우리가 건강할 때 하고픈 말, 우리가 같이 있을때 주고싶은 이 사랑에... 아니, 감사의 편지를 무슨 말 부터 꺼내야 될까요.

당신과 같이한 45년을....먼저 당신을 만나 난 행복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준 당신! 평생을 가정을 위해 아끼지 않는 노력과 부지런한 성품으로 불평없이 즐겨가며 살아가는 당신... 존경합니다!

꾀도 안 부리고, 집안일을 신나게 하는 일꾼, 골치 아픈 집안일이 생기면 말없이 혼자 해결하는 신통이, 어디 아프면 혼자 약 찾아 먹으며 조용히 몸을 추스리는 당신.
내 주치의, 가든어, 운전수, 강태공, 농사꾼, 내 친구, 나의 어드바이저, 내 영어 선생님, 그대는 나의 전부! 항상 내 기를 살려주며 경청해 주는.. 내 똑같은 유머에도 번번이 새롭게 웃어주는 얼간이.


알콩달콩 사는 비결을 아는 남자.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늘 유감으로 사는 나에게 여자로 태어나 남자의 보호 속에 사랑받으며 사는 여자의 삶도 꽤 괜찮음을 알려준 남자.
한창 경쟁 속 사업에 열중할 때 남자로서 가정의 책임감과 사명이 지켜보기에 안타까울 때가 많았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필요를 느끼는...이제는 많이 삭아 힘이 부치는 모습이 가슴이 아리도록 보기 안쓰럽오. 무엇이든 혼자힘으로 해내려는 노력, 식사때도 물이 필요해도 혹시 수저가 안보여도 시키는 법이 없이 열번이고 백번이고 손수 일어나 챙기는 당신.
그뿐인가? 김치꺼리를 사오면 김치를 다 담글때까지 부엌을 떠나지 않고 양다라도 같다주고 배추도 씻고 무도 채썰어주고 부엌바닥도 닦아주고...

서방님에 그런 재롱을 보다보면 어느새 김치통에 김치가 꽉!꽉! 아~ 우리집 부자다...
이렇게 소꿉장난 하며 사는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끝나기 전에 후회 없는 마지막 노후를 만끽 하며 자연을 많이 즐기며 삽시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쳐보리라 “ 내 사랑 실컷 받으세요”

내가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또 만나리라! 항상 내게 용기와 자부심을 부어주는 당신. 여보! 당신은 정말 예뻐! 여보! 당신은 못하는 게 없어! 우리 아이들은 당신을 닮아 똑똑한 것 같애.

늘 그냥 실없이 내 귓전에서 돌던 얘기가 역시 내겐 분명 엔돌핀이 었오. 지금은 내가 다 과거완료로 표현을 하지만 지금까지 건강한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으오.
우리 생애가 끝난다 하더라도 우린 아무 후회도 없는 생을 살았오.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은 생을 주신 주님께 오늘도 강건한 심신으로 기도할 수 있어 행복 합니다.

어느 날 한쪽이 먼저 떠날 때 서러워 울지 맙시다. 우린 멋있는 생을 살았으니까....오늘 하루도 선물로 받은 가을 하늘이 더더욱 아름답군요.

오늘도 예쁘게 맛나게 수놓으며 당신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라요. 우리 건강하게 남은 생을 삽시다.

여보,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하오.

<배수자/ LI 글렌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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