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통신] 안거 살림을 꾸려봄세
2019-11-07 (목)
진월 스님 / 고성선원장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11월, 지난 일요일부터 일광절약시간(Daylight Saving Time)에 따라 앞당겨졌던 생활이 1시간 늦춰지고 본래 자연으로 돌려지며, 조금 느긋한 여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두 장 남은 한국달력이 내일이면 입동절(立冬節)이라 알려주며, 겨울맞이를 재촉하는군요. 이달 하순에는 소설(小雪 11/22)이 있으니 눈 소식도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베이지역 낮은 곳은 비만 내리겠지만, 이곳 산위에는 더러 눈이 쌓여 설경도 볼만 합니다. 이 지역 기후는 사계절 구별보다 건기(乾期, 여름과 가을)와 우기(雨期, 겨울과 봄)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봄과 여름에 푸르던 풀들이 가을과 겨울에는 누렇게 변하고 가라앉는데, 이곳에서는 반대로 지금의 누런 풀들이 비를 맞고 푸르게 되살아남을 보게 되리라 기대되며, 자연의 신비를 느낍니다. 아무튼 근래의 건조한 기후와 바람으로 말미암아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엄청난 피해와 재난을 겪었는데,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되지만, 반대로 홍수의 피해도 예비해야 될 줄 압니다. 인류의 자연환경 오염과 파괴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인과를 되새겨 보아야 하겠습니다.
겨울이 되면, 중국과 한국 등지의 동북아시아 불교나라에서는 수행자들이 동안거(冬安居) 결제기간을 갖습니다. 음력 시월 보름부터 다음해 정월 보름까지 석달동안 선원에서, 일체 출입을 하지 않고 참선수행에 몰입합니다. 원래 ‘안거’란 인도와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는 여름의 우기에 몬순기후로 말미암아 비가 많이 내려서, 도로와 교통이 좋지 않았던 석존당시부터 수행자들이 일정한 곳에 모여, 석 달 쯤 불교공부와 명상수행에 집중하였던 전통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불교가 북방으로 전해지며, 겨울에 춥고 눈이 쌓여 행각이 어려운 기간에는 여름과 같이 겨울에도 안거를 하게 되었지요. 이른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으로 알려진 것처럼, 석존이 성도하기 전에 히말라야 산맥에서의 수행모습이 수행자의 전형으로 소개됨이 주목됩니다.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 즉, ‘춥고 굶주림에서 생사를 초월하려는 수도의 마음을 낸다’는 격언처럼, 오히려 겨울에 수행을 집중하는 경향도 있었지요. 한국에서는 석존의 성도절을 음력으로 섣달 초파일에 기리는데, 대부분의 선원에서는 그즈음에 일주일간 (초하루부터 초여드레까지) 특별히 용맹정진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때는 싯달타의 수행을 본받아서 잠을 자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눕거나 쉼도 없이 화두참구에 열중합니다. 소납도 그러한 정진에 동참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1971년도에 가야산 해인사 선원에서 일주일간 금식하며 장좌불와 용맹정진하고는 성도절 아침에 마무리하면서, 서설(瑞雪)을 맞으며 허공에 날아갈 듯한 경안(輕安)과 평화 및 자유의 환희를 만끽한 경험을 기억합니다. 아울러, 1976년 조계산의 인월정사에서 두 명의 도반과 함께 동안거를 하며, 묵언 정진 속에 이른바 정상체험(頂上體驗)을 했던 보람을 추억합니다. 그로부터 옛 조사 스님들의 말씀이 조금도 헛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도반 여러분들도 형편에 따라 각자 계신 곳에서 나름대로 안거의 살림을 꾸려보시며, 알찬 겨울을 맞으시기 빕니다.
<진월 스님 / 고성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