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샴쌍둥이’ 수구

2019-11-06 (수) 12:00:00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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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보수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가 전파된 역사적 배경에다 한국전쟁과 독재라는 경험이 더해진 결과이다. 특히 독재 권력과의 강한 유착을 통해 친미·반공은 한국기독교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많은 교회들에 권위주의와 수직적 관계로 대표되는 수구적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통계적으로 한국교회는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한때 근대성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던 한국 기독교는 낡은 사고에 갇힌 채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를 보여 왔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신뢰를 크게 상실한 상태이다. 이런 따가운 시선과 외면에 교회는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수정권들이 몰락하면서 이들과 끈끈히 유착돼 있던 교회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들어 툭하면 교회들이 반정부 집회와 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내부의 동요와 위기의식을 외부 대상을 향한 분노의 투사로 다잡으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너무 정치적이고 수구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코너에 몰렸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조국 사태를 틈타 대대적인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교회도 정치에 대해 얼마든 비판하고 쓴 소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방법과 수사이다. 한기총 대표인 전광훈 목사가 지난달 말 광화문에서 연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대회’와 밤샘기도회는 종교인 주도 집회로 보기 힘들 없을 정도로 온갖 막말과 거짓선동이 난무했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이 바로 전 목사였다. 그는 “문재인 이놈은 대통령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간첩짓을 했다. 단 하루라도 문재인이가 청와대에 있는 이상 재앙이 될 것이다. 이제 문재인 모가지 따는 일만 남았다”며 섬뜩한 저주와 비난을 쏟아냈다. 자칫 집회열기에 취하다 보면 오버하게 된다지만 도무지 제정신을 지닌 목사의 발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목사에 그 교인이라고, 밤샘기도회에 참석한 일부 교인들이 “문재인을 죽여야 한다”며 통성기도를 하더라는 한 기자의 관찰기사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광기에 가까운 원색적 증오를 마구 분출해 내는 집회를 종교적 활동이라 볼 수 있을까. ‘으뜸의 가르침’을 뜻하는 수식어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인다.

수구 정치세력은 이런 수구 기독교와 몸이 붙어있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를 최대한 이용하고 도우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 목사 집회에도 어김없이 수구의 아이콘들이 총출동, 온갖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펼쳤다.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 목사는 모세의 지도력, 솔로몬의 지혜, 다윗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발언으로 성경 속 위인들을 한껏 모독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한 수구 변호사는 “공수처가 설치되면 최소한 500만 명은 죽게 될 것”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정말 그렇게 믿고 말하는 것인지 뇌 속이 궁금해질 정도다.

종교의 기본정신은 사랑이다. 그런데 근본주의 종교들에는 이것이 결여돼 있다. 이런 종교들이 드러내는 ‘다름에 대한 집단적 증오’에 편승해 비이성적 주장을 내뱉고 퍼뜨리는 정치세력들의 죄과는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언젠가 버락 오바마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얘기했듯 증오를 핵심교리로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 하지만 광화문 집회의 메시지는 애국을 가장한 증오였다.

10여 년 전 애리조나의 한 침례교 목사가 “오마바를 죽게 해 달라고, 또 지옥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라고 설교하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성경을 줄줄 외울 정도로 신앙심이 뜨겁다는 이 목사는 오바마가 에드워드 케네디처럼 뇌암으로 죽기 바란다고 구체적인 소원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목사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까. 공의로운 하나님이 어떤 판단을 할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먼저 인간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내년 4월에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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