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Va, pensiero

2019-10-23 (수) 김영석/ 맨스필드대 성악.오페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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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Va, pensiero”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제3막에 나오는 합창인데, 시편 137편에 기초하고 있다. 기원전 50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 당하고 히브리 백성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바빌론의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며 히브리 노예들이 부르는 이 합창곡이 특히 유명하다. 이 합창곡으로 인하여 베르디는 19세기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부코는 당시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구약성서의 느브갓네살)의 이름을 이탈리아식(나부코도노소르)으로 줄여서 부른 것이다.

베르디가 나부코를 작곡했을 당시 그는 몸과 마음이 너무나 황폐해진 상태였다. 1838년 첫째 딸을 잃고 이듬해 둘째 아들마저 죽었는데 연이어 그의 아내 마르게리타도 2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게다가 1840년 9월에 발표된 두 번째 오페라도 참담하게 실패한 터였다.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는 베르디에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스칼라 오페라의 지배인 바르톨로메 메렐리가 집요하게 설득을 하며 거의 떠밀다시피 새로운 오페라 계약을 하고 억지로 대본을 맡겼다.


집에 돌아온 베르디가 무심코 대본을 열었을 때 ‘Va, Pensiero, ...나아가라, 황금의 날개를 펴고 나아가라‘는 소망의 내용을 담은 구절이 보였다. 가사를 본 순간, 그 구절이 저절로 노래하는 것이 들렸다고 후에 그는 말했다. 나부코는 초연도 되기 전에 벌써 유명해졌는데 첫 번째 연습이 끝나자 극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조차 일손을 멈추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을 본 관중들은 열광했다. ’나부코‘는 그의 세 번째 오페라였는데 그로서는 처음 맛보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놀랄만큼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후에 이렇게 썼다.

“이 오페라로부터 진정하게 나의 예술적 경력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헤쳐 왔지만 나의 오페라 나부코는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났다.”

소망의 시편 137편이 기초가 된 ’Va, Pensiero‘ 는 절망에 빠진 베르디를 소생시켰고 그를 이탈리아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만들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해방과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던 이탈리아인들은 바빌론에 잡혀와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의 노래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렸다. 이 노래는 당시 밀라노 사람들이 길에서도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이 곡은 제 2의 이탈리아 국가(國歌)라고까지 불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베르디를 찬양하며 공연이 끝나면 “Viva VERD! (베르디 만세”)를 외쳤다. ‘베르디 만세’ 라는 말 속에는 ‘이탈리아 국왕 에마누엘 2세 만세’ 라는 숨은 뜻이 담겨있었다. 그들은 베르디를 찬양하는 구호 속에 당시 독립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를 통일 이탈리아의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국민적 염원을 함께 담아 외쳤던 것이다.

<김영석/ 맨스필드대 성악.오페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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