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위봉 정상의 산불감시대에 서면…아, 일망무제…

2019-09-27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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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Butler Peak (8,535’)

바위봉 정상의 산불감시대에 서면…아, 일망무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본 Butler Peak과 Look-out.

바위봉 정상의 산불감시대에 서면…아, 일망무제…

약간 거리를 두고 본 Butler Peak과 Look-out.


바위봉 정상의 산불감시대에 서면…아, 일망무제…

오르다가 뒤 돌아본 서남쪽 전망.



남가주 일원의 산을 오르다보면 가끔은 정상에 화재감시대(Fire Lookout)가 설치되어 있는 산을 만나게 되는데, 이런 곳은 당연히 전망이 넓고도 깊게 탁 트여있기 마련이고 또 대개는 차량이 올라올 수 있도록 찻길이 나있기 마련이다.

이렇듯 산 정상부에 설치된 화재감시대가 미국 전체로는 한때 약 8000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세상이 빠르게 변해감에 따라 이 또한 구시대의 유물인양 도태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는 약 2000개의 화재감시대가 남아있는데 이 중에 약 600개만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 가운데 약 100개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단다. 미국 전체로는 대략 1주일에 1개의 화재감시대가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이런 추세라면 10년쯤의 세월이 지나면 화재감시대라는 존재는 이제 오로지 흘러간 옛 시절의 전설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LA 인근 지역에는 지금 모두 7개 내외의 화재감시대가 현존하고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 Mt. San Jacinto 지역에는 Tahquitz Peak(8846’), Black Mountain(7772’)에 있고, Big Bear 지역에는 Keller Peak(7882’), Slide Peak(7841’), Butler Peak(8535’)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산들을 가는 기회가 있으면 화재감시대에 올라 그곳 근무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대개의 근무자들은 등산객이 화재감시대의 내부를 방문하는 것을 적극 환영하며, 화재발생시 화재현장의 위치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기본장비인 Osborne Fire Finder의 이용방법이나 해당지역의 생태에 대한 설명 등을 기꺼이 해준다. 가능하면 모금함에 약간의 헌금을 한다면 마음이 더욱 뿌듯해지는 금상첨화의 산행이 되어질 것이겠다.

오늘은 화재감시대가 설치되어있는 Big Bear지역의 산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높은 산인 Butler Peak(8535’)을 안내한다. Butler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청지기” 또는 “집사”이지만, 사실은 사람의 성에서 따다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누가 그 주인공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듯 한데, Sierra Club의 자료에 의하면, 1891년의 제2차 Big Bear Dam Project에서 이를 관장했던 Hydraulic Engineer, W. C. Butler 이거나, 아니면 1905년경에 County Supervisor였던 George C. Butler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Margaret Mitchell이 1936년에 발표한 소설을, Clark Gable이 남자주인공 Rhett역을, Vivien Leigh가 여자주인공 Scarlett역을 맡아 영화로 만들어져 나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Rhett Butler’였음이 상기된다.

아무튼 이 Butler Peak은 Big Bear 지역의 작은 Community인 Green Valley와 Fawn Skin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Fawn Skin에서 7마일 정도의 비포장도로를 달려 자동차로 정상까지 올라가는 방법이 있으나, 비포장도로 이용시의 불편함을 피하면서 실제적인 산행도 할겸 또 가끔은 임의로 이 비포장길이 차단되기도 하므로, 오늘은 비포장도로가 아닌, Big Bear 지역을 동서로 관통해 나가는 간선도로(SR-18)상에 주차를 하고 곧바로 산행을 할 수 있는 루트를 안내한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가파른 능선을 타게 되므로 차로 정상에 오르는 것에 비하면 심신수양의 효과나 심리적인 만족감이 큰 바람직한 산행이 된다. 왕복 2.5마일에 순등반고도는 1440’가 되어 약 3~4시간이 소요된다. 단, 눈이 쌓여있을 때나 비가 올 때는 안전을 위해, 이 루트로의 등산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가는 길

10번 Freeway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SR(State Route)210이 나오면 이로 갈아타고 북상한다. SR330이 나오면 다시 이를 타고 또 북쪽으로 간다. Running Springs Town에 이르면 SR330이 끝나면서 SR18에 통합되어진다. SR18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Snow Valley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3.2마일을 더 가면 길 오른쪽에 넓은 주차공간이 있고 “Call Box 18-424”가 설치되어 있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주차한다.


등산코스

주차한 도로(7180’)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거대한 절벽을 방불케 하는 가파르고 높은 산줄기가 바로 눈앞에서 동서로 뻗어가고 있어, 자못 험준한 그 산세에 다소 위축감을 가질 수 있겠다.

여기서 북북서쪽의 아스라한 능선 위를 자세히 보면 뾰쪽하게 솟아있는 돌출부에 제비집인양 작게 보이는 구축물이 보인다. 바로 우리가 지금부터 올라야 할 Butler Peak이고 그 봉우리 위의 Fire Lookout인데, 저렇게 가파른 곳에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라고 했다. 편도 1.25마일의 길지않은 거리이니 그저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보면 이내 정상에 오르게 될 터이다.

도로를 횡단해서 등산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 SR18을 건너는데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나가는 차량의 속도가 빠르고 이 지점이, 길이 거의 직각으로 꺾이는 곳이라서 운전자들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멀리에서부터 미리 보지 못할 수가 있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일행 전원이 한데 모여서, 양 방향의 길이 다 잘 보이는 지점을 택하여, 좌우를 잘 살피며, 전원이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길을 건널 것을 적극 당부한다.

길을 건너서 동쪽의 길섶을 보면 50m쯤 앞에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표지판쪽으로 가면서 왼쪽의 산비탈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을 눈으로 찾아보면 표지판에 이르기 전에 사람의 족적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이곳을 통해 30m 정도의 비탈을 올라가면 왼쪽 편으로 사람들의 발자취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 발자취, 즉 ‘Use Trail’을 따라가면 곧바로 서쪽의 주능선에 닿게 되는데, 주능선에서는 오른쪽(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고점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데, 이따금 그리 높지않은 빈 전신주가 서있고 굵지 않은 녹슨 철선이 우리가 오르는 방향을 따라 간헐적으로 땅위에 드리워져 있다. 철선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통신시설을 설치하려다 중단한 것인지 아니면 2007년에 있었다는 산불로 소손된 것인지 궁금하다.

고도를 더 올라가다보면 제법 울창하던 소나무나 전나무류의 숲이 사라지고 이젠 오로지 불에 검게 타버린채 서있거나 쓰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또 다른 숲을 이루고있는 황량한 비탈이 되어진다. 그래도 아직은 키가 덜자란 Manzanita, Buckthorn, Yerba Santa들이 넓은 산자락을 가득 채우고 있어, 빠르게 산의 푸르름이 회복되어지고 있는 것임을 알겠다. 아마도 맹렬한 산불이 이 산의 상단부를 주로 태우며 지나갔나 보다.
커다란 고사목들이 얼기설기 큰 바위들 사이에 쓰러져 있고, 촘촘하게 가시로 무장한 Buckthorn들이 길을 막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고, 이젠 Use Trail도 없는 완연한 Cross Country 구간이다. 그래도 이따금씩 솜덩이같은 노랑꽃을 무더기로 피우고있는 Rabbit Brush의 화사함이 있어 마음이 환해진다.

뒤를 돌아보면 멀리 San Bernardino Ridge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는 사시사철 머리가 흰 Mt. San Gorgonio의 모습도 나타난다. 벌써 꽤 많이 올라왔음을 실감한다. 갈수록 큰 바위덩이들이 많아진다.

이윽고 비포장도로(2N13C)가 나타난다. 대략 1마일의 거리에 걸쳐 1000’의 고도를 올라온 셈으로 이제 해발고도 8200’지점에 서있게 된 것이다.

좌측으로 뻗어가는 도로를 따라간다. 서쪽으로 넓게 펼쳐지는 푸르고 밋밋한 비탈과 능선위로 유독 고깔처럼 뾰쪽 솟은 바위봉우리가 있고 그 위에 작은 건물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찌보면 둥글한 대지의 몸에 불쑥 솟아난 봉긋한 젖가슴과 젖꼭지라고 볼 수 있을 듯도 하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면 어떻게 저렇게 뾰쪽한 바위봉 위에 화재감시대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저곳에 올라갈 수 있을까 마냥 신기한 느낌이다. 그러나 정상 봉우리에 바짝 다가가서 보면 그 북쪽 뒤로 빙 돌아서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뒷쪽의 지형이 앞쪽과 아주 크게 달라 다소 황당하다. 뭐랄까, 마치 영화촬영을 위해 정면만을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놓고 뒷쪽은 그냥 구축물이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얼기설기 기둥을 세워놓은 세트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무질서하게 큰 바위들이 이리 저리 널부러져 있어 마치 집중포격을 당한 격전의 폐허같다고도 하겠다.

이윽고 마침내 정상에 올라선다. 동쪽으로는 Big Bear Lake, Sugarloaf Mountain(9952’), 또 그 주변의 푸른 산줄기들이,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San Bernardino Ridge, Mt. San Gorgonio(11503’)가 한눈에 다 들어오고, 남서쪽으로는 Crafts Peak(8364’)이 가깝고, Slide Peak(7841’), Keller Peak(7882’)이 그 너머 바로 뒤로 모습을 드러낸다.

서쪽으로는 Lake Arrowhead의 푸른 물이 보석처럼 빛나고 그 뒤로는 Mt. Baldy(10064’) 와 그 주변의 높은 봉우리들이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듯 작게 보이며, 북쪽으로는 White Mountain(7727’)이 그리 멀지 않은데, 그 너머의 Mojave 사막은 텅빈듯 허허롭고 아득하다.

사방팔방의 전망이 과연 일망무제라, 화재감시대를 이 벼랑같은 바위산 봉우리에 어렵사리 올려 지어놓은 까닭을 이해하겠으나, 그래도 어느 날엔가 유난히 거센 폭풍우가 불어닥치면 새의 둥지같은 이 건물이 돌연 한닢 낙엽인양 홀라당 날아가 버리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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