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를 위해 요리하세요

2019-09-18 (수) 김미연/ 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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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요리하세요?” 맞은 편의 젊고 예쁜 엄마가 물어본다.
열두어 명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대답이 궁하다. “나를 위해서 요리해요!” 엉겁결에 튀어나온다.

세계 각국의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고 해서 등록했다. 초등학생 엄마들이 식탁을 둘러싸고 있다. 테이블은 매너 자체다. 음식 냄새가 배는데도, 다들 옷을 차려입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한 젓갈씩 아주 조금 집어서 맛을 본다.

처음 간 날, 그녀들은 나를 수상쩍게 바라봤다. 저 나이에 요리를 왜 배울까 하는 표정이다. 정보를 교환하고, 수다를 즐기는 그들 틈새에서 나는 교양있게 보이려고 말수를 줄인다.


문제는 선생이 가끔씩 ‘이것은 아시죠’ 하고 넘어간다는 점이다. 용기내어 물어본다.
“어떻게 해요? 전 멸치를 넣고 오래오래 끓이는데요. 잘 우러나게요.”
“비린내 나서 안 돼요. 센 불에 멸치를 달달 볶아서 냄새를 빼야 해요. 물 붓고, 팔팔 끓으면, 빨리 건지고, 다시마 넣고, 뭉근하게 끓이세요.”
이제껏 뭐했길래 그것도 모르냐는 눈치가 테이블에 살짝 감돈다.
선생은 레서피를 대충 설명한 후, 불을 쓰려고 부엌으로 간다. 여자들의 수다가 왕성해지는 시점이다.

왠지 기죽은 나는 선생을 도와준다고 따라 들어가지만, 나 같은 초짜에게 맡길 선생이 아니다. 선생은 불 위에서 집중한다. 볶음 요리는 재료 넣는 순서가, 튀김 요리는 불 조절이, 부침 요리는 뒤집는 시점이, 졸이고 끓이는 요리는 뚜껑의 유무가 중요한 것을 알았다. 미리 손질해 둔 고기, 해산물도 보인다. 잡내 제거와 밑간 작업이다. 부엌에서 남모르게 하는 은밀한 손길이 맛을 결정한다.

하루에 세 번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잘해야 할 영역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충 먹고 살았다. 맛없어도, 같은 것도 잘 먹는 남편, 아들은 자라서 나갔고.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언제부턴가 내가 만든 음식은 먹어도 충족은 커녕 헛헛해지기만 했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를 재수, 삼수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친구는 놀렸다.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 나는 부엌에 혼자 있다. 홀로서기의 시간이다. 우아한 왕따에 쫓겨서 들어간 요리 교실 부엌, 거기서 배운 것들이 내 부엌에서 살아난다. 꼿꼿한 몸매를 좋아하는 왕새우, 꼬치 끼워서 레몬즙 떨어뜨려 살짝 삶는다. 새우의 벗은 몸에 우동 세 줄을 칭칭 감고, 팬에서 노릇하게 구워낸다. 속옷 바람의 새우는 파프리카 토마토 파슬리의 화사한 소스를 입고 무대 위로 올라간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남편은 이제 보상을 받는다. 혼연일체가 된 새우와 나의 존재감, 아, 이 뿌듯함.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니 남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못 보던 빨강 냄비가 부엌에서 끓고 있다. “내가 만들었어, 맛이 아주 좋아” 뚜껑을 열어 보니, 야채 고추장 범벅탕이었다. 이게 맛있어?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녁 먹으라고 찌개를 퍼준다.

남편이 늦복 터졌다고 믿으며, 내 음식에 자신만만 했었다. 멸치와 고추장을 슬금슬금 꺼내기도 하고, 밑반찬을 슬며시 사 들고 오는 남편, 찌개까지 직접 끓일 줄은 몰랐다. 전에 먹던 음식을 남몰래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 나를 위한 요리 맞네, 뭐...
나를 위하여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말란 법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김미연/ 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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