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 K-타운 한인의 애환 절절히 저스틴 전 감독의 가족 드라마

2019-09-06 (금) 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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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미즈 퍼플’(Ms. Purple) ★★★★ (5개 만점)

▶ 노래방 도우미로 생계 혼수상태 아버지 돌보는 딸 가출 밥 먹듯 하는 남동생…
외로운 팜트리 장면 등 이민자 그늘 빼어나게 담아

LA K-타운 한인의 애환 절절히 저스틴 전 감독의 가족 드라마

오랜만에 재회한 캐리(왼쪽)와 케이시가 남매의 다정한 때를 보내고 있다.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탄 사우스 LA에서 신발가게를 경영하는 한국인 형제가 LA폭동으로 겪는 후유증을 다룬 ‘국’(Gook)을 제작·감독하고 주연도 한 한국계 저스틴 전이 각본을 쓰고 제작·감독한 LA의 한국인 가족 드라마로 가슴 아프고 아름답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지극히 돌보는 딸과 가출한 남동생과의 재연결을 통해 질긴 가족 간의 연계를 차분하고 민감하게 다룬 빼어난 작품으로 애잔함이 화면 가득하니 배어 있어 조용히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작품 근저에는 보다 잘 살아보자고 조국을 떠나 이국으로 온 모든 이민자의 고독한 모습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다.

처음에 영일(제임스 강)이 딸 케이시에게 한복을 입힌 뒤 “우리 딸 참 곱기도 하구나”하며 찬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일은 케이시와 역시 한복을 입은 아들 캐리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간다. 영일이 두 아이와 함께 아내의 무덤으로 가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되나 후에 플래시백으로 아이들 어머니의 소재가 알려진다.


이어 시간대는 현재로 돌아와 케이시(티파니 추)가 집에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나온다. 케이시는 아버지를 돌보느라 자기의 피아노 재능을 살릴 학교도 중도에 포기하고 코리아타운에 있는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면서 생계를 번다. 여기서 한국인들 특유의 노래방 문화가 자세히 묘사된다.

영일을 돌보던 간호사가 그만두면서 케이시는 가출한 남동생 캐리(테디 리)를 찾아가 돌아오라고 간청한다. 캐리는 코리아타운 게임 방에서 소일하는데 그가 왜 가출했는지 자세한 이유는 안 밝혀지지만 영일이 유독 케이시를 편애하는 반면 캐리에겐 폭력마저 행사하는 장면을 통해 가출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케 한다.

케이시는 노래방에 나가면서 여기서 알게 된 젊은 부자 손님 토니(로니 김)의 여자가 된다. 영화 제목은 토니가 사준 보라색 고급 한복을 입은 케이시를 보고 한복집 여자가 “보라색이 참 잘 어울린다”고 한 말에서 따온 것. 케이시에게 호감을 표하는 또 다른 남자는 노래방 주차장 발렛을 하는 라티노.

케이시의 간청에 집으로 돌아온 캐리가 케이시가 노래방에서 일하는 동안 아버지를 돌보는데 캐리는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누운 아버지를 침대째 이동, 콘도 옥상으로 올라가 햇볕을 쐬고 또 게임방에도 간다. 이로 인해 캐리와 영일의 관계가 아물 듯 하나 캐리는 견디질 못하고 다시 가출한다.

그 동안 아버지를 호스피스에 보내길 거부하고 돌보던 케이시도 이젠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호스피스에 보낸다. 좌절과 고뇌에 지쳐 술에 취해 클럽에서 한복을 입은 채 광란의 춤을 추는 케이시의 모습과 영일이 캐리와 다투다 아들을 구타하는 장면이 교차 묘사되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슬픔으로 채워 놓는다.

영화는 가끔가다 홀로 서 있는 외로운 팜트리를 보여주면서 이국에서 온 이 나무와 이민자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연기들이 좋은데 특히 조용하고 차분하게 창호지에 물 스며들 듯이 케이시의 내면을 보여주는 티파니의 연기가 감동적이다. 촬영도 아주 훌륭하고 현악기의 비감하고 둔중한 음악도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12일까지 Nuart 극장(11272 Santa Monica) 상영.

<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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