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들어서는 순간 “와, 공룡이다” 탄성이 절로

2019-08-23 (금) 글·사진=유정원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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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셔널몰’ 워싱턴 DC

‘세계의 서울’구경은‘몰’(Mall)부터 박물관 미술관 등 끝없는 볼거리...백악관 한국전참전기념비 등도 가까워


미국의 수도에 가 본 한인은 많지 않다. 캘리포니아, 시애틀, 텍사스처럼 서부는 물론 시카고, 덴버 등 중부나 심지어 뉴욕, 애틀랜타 동부지역에 살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막상 휴가를 내고 돈을 들여 ‘미국의 서울’ 구경을 떠나긴 쉽지 않다. 워싱턴 DC를 여행하다 보면 당연한 일에 자주 놀란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던 기관들이 그야말로 즐비하기 때문이다. 백악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건물마다 붙어 있는 명패가 화려하다.

그저 길을 걷다 보면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앞이다.

연방 정부기관을 비롯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연방수사국(FBI), 세계은행(WB) 등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본산이 밀집해 있다. 심지어 민간기관까지 온통 ‘본부’ 뿐이다. 아기자기한 포토맥 강 하나만 건너면 거대한 국방부 펜타곤과 중앙정보국(CIA)도 코앞에 자리하고 있다.

워싱턴 DC의 퇴근시간은 뻑적지근하다. 시내 곳곳의 길이 차단된다. 모터사이클을 탄 경찰이 경계를 서고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는다. 대통령 전용으로 보이는 검은색 헬리콥터들이 포토맥 강 위를 굉음을 내며 날아가기도 한다. 최고 VIP들이 귀가하는 길이다.

대통령보다 부통령의 행렬은 훨씬 잦다. 해군 천문대 부지에 관저가 있는 부통령은 상원의장을 겸하고 있어 거의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십여 대의 모터사이클이 앞뒤를 호위하고 경호차량들이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시내를 달리는 광경은 볼 만하다. 경호도 중요하겠지만 예우를 위한 의전 성격이 짙다는 느낌이다.

이 모든 풍경의 한 가운데 내셔널몰(The National Mall)이 있다. 미국인들이 ‘몰’(Mall)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언뜻 쇼핑몰인 것처럼 들리지만 미국의 기념비적 조형물과 박물관들이 몰려 있는 지역을 말한다.


링컨 기념관, 워싱턴 기념탑,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을 비롯해 한국전 참전기념비와 월남전 참전기념비도 이곳에 들어서 있다.

백악관은 내셔널몰과 붙어 있는 콘스티튜션 애비뉴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다. 한마디로 ‘몰’은 워싱턴 DC의 중심이자 미국의 중앙이다.

한인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역시 내셔널몰 안에 위치해 있다. 놓치기 아까운 박물관이 여럿이다. 공룡과 화석이 가득 찬 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비행기부터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선이 즐비한 항공우주박물관(National Air and Space Museum)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사박물관 2층에는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이 입던 드레스 진품이 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코스 중의 하나다. 항공우주박물관은 언제나 어린이와 학생들로 붐빈다.

하지만 항공모함 관제탑과 보잉 여객기 조종실 등을 그대로 설치한 곳에는 어른들도 줄을 선다. 자연사박물관은 영화 시리즈에 나올 만큼 유명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공룡들의 크기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몰’의 매력은 또 다른 포인트에 숨어 있다. 내셔널몰은 박물관 역할을 넘어 미국 예술의 청지기 몫을 톡톡히 한다.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국립식물원(US Botanic Garden), 허쉬혼 조각공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아서 새클러 갤러리(Arthur M. Sackler Gallery), 프리어 미술박물관(Freer Gallery of Art), 국립아프리카 미술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등이 모두 우아한 건물로 지어져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내셔널몰의 모든 시설 입장료는 무료다.

미술관 중에서도 국립미술박물관은 단연 압권이다. 특별 전시회가 연중 열리며, 아무 때나 찾아도 가슴을 뛰게 할만한 작품들로 넘친다. 미술책에나 실릴 듯한 걸작들과 미처 알지도 못한 수많은 작품들이 언제나 가득 채우고 있다.

워싱턴 DC는 애당초 프랑스의 파리를 닮게 디자인된 도시다. 1791년 프랑스인 피에르 샤를 랑팡트가 도시를 설계하면서 연방 의사당과 워싱턴 기념탑 사이 1마일을 공원 부지로 계획했다. 규모는 이후 배 이상으로 커졌지만 프랑스 분위기는 여전하다.

내셔널몰은 가로수가 줄지어 선 비포장도로가 반듯하게 이어져 있다.

이 흙길을 걷다보면 십중팔구 인상파 화가의 작품에 나오는 장면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권력의 도시 워싱턴 DC에서 ‘몰’은 파란 하늘을 올려보고, 벤치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진정한 미국의 저력을 절감하게 되는 곳이다.

산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이 땅에 길이 살아갈 자녀의 손을 잡고 내셔 널몰을 둘러보라. 후손의 가슴에 깊 은 인상을 남기고 평생의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글·사진=유정원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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