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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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유칼립투스의 향기

2019-08-14 (수) 김희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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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방랑으로 부터의 그리움을 전하며 구름도 잠시 쉬었다 넘는 곳, 안데스 산맥 해발 2850m의 산등성이에 자리한 키토 테니스 골프 클럽, 엘 꼰다도(El Condado)는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사교클럽이다. 골프장내에 수영장, 승마장, 체육관, 어린이 놀이터 등 모든 위락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릉 지대를 잘 이용해서 링크 코스로 설계된 골프장은 사시사철 고운 꽃들이 피어 있는 자연환경과 온화한 기후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골프는 인생과 같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골프를 치러갈 때 혹시나 기대를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돌아온다는 말이 실감 난다. 골프와 인생은 마음대로 안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필드에서 만나는 고지의 구름은 자연만이 창조 할 수 있는, 형상은 있으나 실체는 없는 조형물의 산실이며 조용히 사라져 가는 멋진 예술품이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도 능선에 잠시 기대며, 밝은 표정으로 “오늘은 공 잘 치세요” 침묵으로 말하고 가볍게 손 흔들며 지나 간다. 지상의 아름다운 꿈들을 가로질러 푸른 하늘을 유유히 떠가는 뭉게구름과 유칼립투스의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숲에는 활기찬 생명력이 태동한다.


함께하는 파트너는 정답고 싱그러운 바람은 부드럽다. 적도의 밝은 햇살은 골퍼들을 구리 빛 건강한 피부로 가꾸어 주고, 얼굴 빛은 인디오의 피부색을 닮아 간다.

상쾌한 운동으로 약간의 피로감을 느낄 때 사우나는 적절한 묘약이 된다. 골퍼들은 유칼립투스(Eucalyptus)의 풋풋하고 진한 향기가 흠씬 벤 클럽의 사우나에 매료된다. 유칼립투스의 말린 잎을 황토로 빚은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담아서 사우나실의 증기에 증류시키면 솔솔 향기를 뿜어낸다. 신선한 천연향의 이파리 냄새와 달콤한 향기는 아로마테라피의 효과를 상승시킨다. 좌선하는 마음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나면 긴장된 몸의 근육이 풀어지고 피로가 가시게 된다. 나는 고국에서 꽃가루 앨러지가 심했는데 이곳에 와서 비염이 없어져 신기했다. 지연요법으로 치유의 효과를 보았다.

하루 한 차례 스콜이란 이름의 세찬 빗줄기가 대지를 두들기며 지나간다. 바에 앉아 시원한 한잔의 피나쿨라다를 마시는 경각의 시각에 빗줄기는 멈추고, 키 큰 유칼립투스의 반지레한 짙푸른 잎새 사이로 햇살은 눈부시게 빛난다. 알콜에 약한 숙녀는 파인애플 주스속의 럼(rum)에 취하고, 사우나의 열기에 취해 얼굴은 발그스레 홍조를 띤다.

오래된 해묵은 시간은 멈추어 서고, 아주 낮고 조용하게 속삭이는 바람이 유칼립투스의 향기를 전하며 추억은 알바트로스의 새처럼 커다란 날개를 펴며 비상한다.

<김희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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