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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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마음으로

2019-08-07 (수) 나혜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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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분이 새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뉴저지를 떠나 남쪽 도시로 가실 때 프린스턴에 있는 옛집은 세입자를 들여 유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 오래 거주하지 못하고 나가는 탓에 매년 부동산의 힘을 빌려 세입자를 찾아야만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편하게 오랫동안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몇 년 전 살림을 대폭 줄여서 콘도로 들어와 사는 우리 가족은 요즘 대세라는 미니멀리즘을 일찌감치 실천하고 있는 셈인데 물건이야 줄여서 살 수 있다지만 가끔씩 두 아들이 엄마집을 찾아왔을 때는 다섯 식구를 수용하기에 턱없이 비좁은 공간 탓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분의 집을 방문하여 둘러보았다. 27번과 1번 도로 진입이 용이하다는 장점과 몇 시간을 머물러 있어도 쥐죽은듯이 고요한 동네 환경, 널찍한 뒷뜰을 담기에 부족하지 않은 커다란 통유리가 있는 거실, 몸만 들어와 살아도 될 만큼 필요한 가구들이 포진해 있어 낡은 우리집 가구들을 이참에 과감하게 처리해도 되겠다는 발상의 용이함, 우리 다섯식구에게 알맞은 네 개의 방이 있음이 마음에 들었다. 두 아들을 편히 재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난 2002년 경 미국이 악화된 경기부양책으로 저금리정책을 펼쳐 주택융자 금리가 인하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할 무렵 우리 부부도 9년 동안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주택을 구입했었다. 큰딸은 친구 하나 없는 생소한 곳에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해야 했고 두 아들의 초등학교는 집에서 백 미터도 안되게 가까운 곳이었다. 세 아이에게 방 하나씩 주고 새 침대를 넣어줄 때의 그 기분좋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희열이었다.

우리 부부가 갖고 있는 돈으로 간신히 마련한 타운하우스는 한인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작은 타운에 있었다. 왜냐하면 옆동네에 비해서 학군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며 학군이 좋은지 떨어지는지에 따라 옆동네와 주택 가격이 십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방을 하나씩 가질 수는 있었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좋은 학군’의 교육은 받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그때 학군 좋다는 옆동네로 이사를 갔었다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비록 코딱지만 했지만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줄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던 나의 마음 한켠에는 세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늘 미안함이 자리해 있었다. 그놈의 ‘좋은 학군’에서 키우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하지만 다행히 나의 세 아이들은 좀 떨어진다는 학군에서 성실하고 반듯하게 자리를 지키며 공부했고 이제는 청년들이 되었다. 그렇게 청년들이 떠나간 집을 정리하고 우리 부부는 딸을 따라서 작은 콘도로 이사했다.

제발 내 집인양 생각하고 살아달라는 그분의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었지만 결국 거절하고 말았다. 고즈넉하고 운치있고 넓은 뒷뜰과 모과나무와 감나무가 생생하게 자라서 열매를 거두는 집, 어쩌다 젊은 두 아들이 오면 방 하나씩 차지하고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는 집, 큰딸이 주말 늦게까지 늦잠을 잘 수 있게 온 사방이 고요한 집, 이제는 뭐든지 들이고 채우고 늘리기보다 버리고 줄여야 하는 내 나이에 이런저런 희망사항들에 눈이 멀어 욕심을 내는 이 부질없음을 탓하면서…… 내 두 팔 너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창문이지만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과 푸른 하늘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이 집에서 나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지내려 한다.

<나혜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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