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구순이 넘으신 친정어머니를 뵈러 서울 나들이를 한다. 어머니께서 아직은 막내 딸을 알아보시니 일 년에 한 번, 생신날에라도 가서 얼굴을 뵙고 싶어서다.
매일 어머니와 지내기 위해 장거리 여행은 접었다. 서울 안에서 맴돌다 오는 잠자리 형 여행이랄까. 종종거리며 서울 장안을 뒤지고 다닌다. 책방, 골동품 상점, 인사동 거리, 남대문 시장, 서촌, 북촌 마을, 창덕궁으로 성북동 미술관으로 그리고 넘쳐 나는 도시 곳곳의 맛집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시인 류시화 씨는 자신의 여행 목적은 새로운 장소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묻지 않으며, 누구를 만나 생의 교감을 나눴는가도 잘 묻지를 않는다고 말한다.
초를 다투며 변하는 서울은 늘 새로운 도시로 다가선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헤어져 있던 시간의 틈을 채우며, 삶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공감되는 말이다.
대학 동창 오인방은 우아한 차림이 어울리는 청담동 몽중헌 중국집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모던한 분더샵 귀빈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묵은 이야기를 풀었다. 아카펠라 써클 친구들은 털털하게 서촌의 맛 골목 쪽갈비 집에서 모여 생맥주잔이 부서져라 “반갑다!”를 외치고. 언니와 야간 개장을 한 창경궁에서 초롱불 밝히며 걷다보니 싸늘한 밤기운이 온몸에 휘감긴다. 혜화동을 지나 성북동 고개 너머 파장 시간 다 되었어도 따뜻한 빵과 커피가 있던 빵공장. 작은 오빠와 다녀오던 아버지 산소 성묘길, 봄 햇살이 살짝 더웠던 우리는 빙수처럼 갈아 놓은 얼음 동치미 냉면으로 깔끔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총총거리며 다닌 시간을 정리하다 보니 2주간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파노라마의 하이라이트는 남동생의 단골 한정식 식당에서 치른 어머니의 생신이다. 봄내음 가득한 냉이 무침과 맛깔스런 상차림이 한눈에 나를 사로잡았지만, 남도창 전수자 여사장님이 장구치며 해주신 남도민요 즉석 공연과 아흔셋의 어머니께서 장단을 맞추며 노래 부르시는 모습으로 오버랩 되었다.
떠나기 전날 큰 언니가 평소 내가 좋아하던 사리원의 육수 불고기를 사주어, 잘 먹고 힘내서 14시간 비행길에 올랐다.
정리하던 펜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냉이 무침의 봄 맛과 연한 육수 불고기, 시원한 냉면국물, 생맥주 한 모금, 카푸치노 한 잔이 친지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 속에 버무려진다. 남대문 시장에서 몇천원 깎자고 하던 흥정이, 창경궁 비어 있는 침소 앞 댓돌의 차가움이, 간송 전시회에서 만난 ‘도자(陶瓷)의 감상은 오감(五感)을 가지고 하라’ 는 글이 마음을 울린다.
사진작가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풍경 사진에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사람이다! 가슴으로 만난 사람들이 그 장소에 함께 하지 않았다면 이번 서울 나들이도 그저 사람 없는 풍경 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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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 뉴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