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2년 미국인이 발명, 뚜껑 중심이 안정되게
삼각형 꼭지점에 톱니 새겨, 수백번 실험 후 21개 찾아내
▶ 그 이하면 탄산압력 못이기고 더 많으면 따기 힘들어 억지로 따다 병 깨져
맥주 페트병 뚜껑인 트위스트캡도 톱니 수 21개
병뚜껑 안의 꼭지점의 수 : 원 안에서 정삼각형을 같은 각도로 움직였을 때 쌩기는 꼭지점의 수.
가짜 술이 난립하면서 위조방지 기술이 들어간 ‘체커 방식’의 기능성 병뚜껑이 등장했다. 체커 방식이 적용된 기능성 병뚜껑에는 길이 2~3cm의, 끝이 원판 모양으로 된 추가 매달려 있다.
뚜껑이 열리면 추는 술명 안쪽 3~5cm 지점에 있는 플라스틱 지지대에 결합이 되는데 술을 따르지 않을 때 입구를 막는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가짜 술을 넣을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매일 신제품이 쏟아지는 편의점에서 가장 오래된 제품을 찾는다고 하면 무엇일까. 음료수 진열대 맨 아래 쪽에 진열된, 지난 1919년 미국에서 처음 판매가 시작된 청량음료 코카콜라를 꼽는 이들이 많겠지만, 놀랍게도 더 오래된 역사를 지닌 건 코카콜라 병의 입구를 단단히 막고 있는 병뚜껑이다. 무게 3g에 불과한 납작한 알루미늄 재질로 된 병뚜껑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인 1892년 발명됐다. 코카콜라는 전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덕분에 오랜 생명력을 가졌지만 단순히 병의 입구를 밀봉하는 뚜껑이 지난 100여년간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고 사용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밀봉의 신세계를 연 ‘왕관 병뚜껑’
19세기 후반 서구에서는 병에 든 탄산음료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정작 보관하는 방법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다. 와인처럼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면 미생물이 번식해 내용물이 쉽게 변질됐고, 맥주처럼 탄산이 많은 주류는 뚜껑을 열 때 샴페인처럼 기포가 올라와 마시기도 어렵고 내용물 대부분이 쏟아졌다. 1950년대에는 우리나라 소주도 병뚜껑으로 나무 마개를 사용했는데, 마개를 딸 때 나무 가루가 소주 안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주병을 따기 전에 바닥을 팔꿈치로 퉁퉁 치거나, 술 윗부분을 일부 버리는 습관은 나무 마개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단박에 해결한 게 1892년 미국에서 발명돼 지금까지 사용되는 일명 ‘왕관 병뚜껑(Crown cap)’이다. 병 위에 모자처럼 눌러 씌운 다음 그 둘레를 뾰족뾰족한 왕관 모양으로 꽉 찍어 눌러서 만든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편의점 진열대에 있는 콜라, 사이다 등 청량음료 병에는 대부분 이런 왕관 병뚜껑이 사용됐다.
왕관 병뚜껑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병 크기와 상관 없이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왕관 병뚜껑 둘레의 톱니 수는 21개로 모두 똑같다는 점이다. 이 톱니 수는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원 안에서 정삼각형을 점차 절반씩 같은 각도로 회전시켰을 때, 정삼각형의 꼭지점인 톱니 수는 3, 6, 9, 12, 15, 18, 21, 24개의 순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톱니 수가 적으면 탄산을 병 안에 완벽히 밀봉해두기 어렵고, 반대로 톱니수가 너무 많으면 너무 병을 꽉 물어서 뚜껑을 따기 어렵게 된다. 수백 번의 실험결과 톱니 수가 21개보다 적으면 뚜껑이 병 내부에 있는 탄산 압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열렸고, 그보다 톱니 수가 많으면 뚜껑을 억지로 열게 되는 과정에서 병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톱니 수 21개는 병뚜껑 기능을 완벽히 발휘하기 위한 ‘황금비율’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탄산이 들어있는 내용물은 반드시 왕관 병뚜껑으로 밀봉해야 하는 걸까. 사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1.5ℓ 페트병에 든 맥주는 플라스틱으로 된 ‘트위스트 캡(Twist cap)’을 병뚜껑으로 쓴다. 그런데 트위스트 캡도 안쪽 톱니 수는 21개다. 왕관 병뚜껑은 한번 개봉하면 모양이 구부러지면서 재사용이 불가능한 반면, 손으로 돌려서 여닫는 형태인 트위스트 캡은 재사용이 가능해, 먹고 남은 내용물을 보관해야 하는 대용량의 맥주병에 적용됐다. 모든 병 맥주에 트위스트 캡을 쓸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건 트위스트 캡이 왕관 병뚜껑보다 제조원가가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악덕업자는 트위스트 캡이 재사용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 병 안의 내용물을 바꿔치기 해 비싸게 판매하는 사기를 치는 경우도 많았다. 왕관 병뚜껑은 제조원가가 저렴하면서도 내용물을 안전하게 지키기에는 더 나았던 것이다. 여전히 편의점 진열대에서 왕관 병뚜껑을 볼 수 있는 이유다.
‘기능성 병뚜껑’의 시대왕관 병뚜껑이 개발된 이후 병뚜껑은 다양한 쓰임에 맞게 진화해왔다. ‘밀폐와 개방’이라는 병뚜껑 고유의 기능을 넘어 위조방지, 안전개봉, 첨가물 수용 등의 부가기능을 포함한 ‘기능성 병뚜껑’들이 개발된 것이다. 병뚜껑에 위조방지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은 고급 위스키를 판매하는 주류업계였다. 빈 병에 가짜 술을 주입해 파는 사기가 늘자, 고객들의 건강을 지키고 브랜드 가치 하락도 막기 위해 위조방지 병뚜껑 개발이 진행됐다.
한번 술을 따라낸 병에 가짜 술을 부어 넣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최선이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병뚜껑에 커버를 씌우거나 홀로그램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은 한계가 분명했다. 이것 조차 그대로 위조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게 병뚜껑을 이용해 아예 물리적으로 술을 병 안에 부어 넣을 수 없게 만드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게 병뚜껑에 추를 다는 ‘체커(인증 추)’ 방식이다. 병뚜껑에 길이 2~3㎝의, 끝이 원판 모양으로 된 추가 부착된 형태다. 병뚜껑을 열면 추가 분리돼 술병 안쪽 3~5㎝ 지점에 있는 플라스틱 지지대와 결합된다. 술을 따를 때는 추가 병 입구 쪽으로 밀려나며 술이 밖으로 나올 공간이 생기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추가 입구를 단단히 막아버린다. 병을 깨지 않고서는 가짜 술을 병 안에 부을 방법이 없다.
숙취 해소 음료업계는 내용물에 알약 같은 보조첨가물을 넣는 방법으로 병뚜껑을 이용하고 있다. 병뚜껑을 손으로 위에서 누르거나 개봉할 경우 병뚜껑에 수용된 보조첨가물이 병 속으로 떨어지는 방식으로 음료와 혼합해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왕관 병뚜껑과 트위스트 캡의 장점만을 혼용한 병뚜껑도 등장했다. 겉모양은 왕관 병뚜껑인데 개봉하는 건 손으로 여는 트위스트 캡 방식인 것이다. 일부 맥주 제품 등에 적용돼 있는데, 야외에서 쉽게 마실 수 있도록 편의성을 강화한 제품이다. 간혹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병따개를 찾는 소비자들도 많은데 눈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병뚜껑 옆면에 난 선이 나사 선 같은 회전 모양이면 손으로 여는 트위스트 캡이고, 일직선으로 돼 있으면 병따개로 열어야 하는 왕관 병뚜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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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기자>